마을이야기/충동질(충청도식동네걷기)

대치막걸리의 부활을 응원하며...

잉화달 2015. 6. 7. 14:36


대치양조장의 부활을 응원하며...

 

                                                                                          잉화달


   과거 조선시대 이전부터 주정리(酒亭理)는 청양읍에서 공주로 넘어가는 한티(대치)의 길목에 위치해 고개를 오르내리던 사람들에게 유명한 주막거리 였습니다.

술 잘 빚는 동네라 소문이 나서 이름도 주동(酒洞)입니다. 이 곳 주정리와 탄정리 일대는 면천에서 두견주를 빚던 복씨 가문의 후예들이 전국 최대의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인근에 향정과 독정등 정자도 많아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주동과 독정을 합해 주정리라 부르게 되었습니다.(청양군지 참조)   한티고개 가는 길의 주막거리 대치막걸리는 1930년대 이후 양조장 시설을 갖추고 대치면 지역 전체에 술을 공급하기 시작합니다. 멀리 40리 밖 북쪽 끝 상갑리에서 남쪽 끝 개곡리에 이르기까지 면내에 버스정류장이 있는 마을의 주막에는 간단한 생필품과 더불어 막걸리를 파는 주막이 있었고, 대치양조장은 매일 막걸리를 생산해서 이 곳 마을들에 막걸리를 공급했었습니다.

   농주라는 별명이 말해주 듯 칠갑산 자락 골골마다 동네 모내기와 바심(추수)때 농사꾼의 타는 목을 달래고, 동네 큰일이 있을 때 마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던 고향 술인심의 시작이 대치막걸리였습니다.

    199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로 이미 많은 이들이 고향을 뜬 터에 칠갑호 저수지가 들어서면서 큰 마을(원동, 승주동등)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금은 양조장과 담 하나를 두고 인접해 있는 수정초등학교(현재 전교생 20여명내외)와 우체국, 농협을 비롯한 지역의 중심 영향력이 급작스럽게 축소되며 지역이 점차 와해되는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결국 주정리의 면천복씨와 광대리의 경주최씨가 번갈아 운영해 가며 명성이 자자하던 대치막걸리는 산업화·도시화에 이어 면 지역의 쇠락과 더불어 문을 닫게 됩니다.


문 닫았던 시기의 대치양조장 사진


   저희와 동업관계에 있던 최씨집안에서 양조장의 경영권을 새로운 분에게 넘긴지 얼마 되지 않아 위와 같은 이유로 새로운 주인 또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양조장사업을 접었다고 합니다.   이후 몇 년이 흐르고, 문을 닫은 양조장 술 단지에 다시 술익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술밥 짓는 익숙하고 구수한 냄새가 다시 나기 시작합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얼마나 흐뭇하고 행복한 냄새인지 모르겠습니다.

대치 막걸 리가 다시 익어가기 시작합니다.

어려운 시기 사양산업이라는 막걸리를 꽤 오랜 기간 연구했던 ㅇㅇ가 우리 주동의 대치막걸리를 다시 부활시켜, 대치면 지역에 다시 활력을 불어 넣고 계십니다.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755월말 경 어느 날씨 좋던 봄날, 경운기로 읍내에서 집채만한 은빛 제성기통을 가져와 설치하고 참나무오크통이 하얀색 플라스틱통으로 바뀌었습니다. 1978년 드디어 2.5t 트럭을 장만해서 고사를 지내던 기억, 겨울이면 종국실(누룩배양실)에서 동선이(그 당시 운영주 최씨댁 아들)와 꼴뚜기를 구워먹으며 밤을 새우던 그 자리 그 술단지에 다시 향기로운 술향기가 배어나옵니다.

 

대치양조장의 명성과 아름다운 술맛을 다시 살리고 계신 000사장님께 감사드리며, 칠갑산자락 청룡골 암반수와  우리쌀로 빚어낸 우리 농주 대치막걸리가 이 지역의 마을공동체와 더불어 함께 훨훨 날기를 소망합니다.


대치막걸리 !! 지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