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얼의꽃魂의불

천정대, 백제의 중흥을 구상하던 정사암회의가 열리던 장소

잉화달 2009. 9. 1. 22:59

 잠시 천정대에 올랐습니다.

내려와서 지천하류의 다리를 못찾아서 청양군 장평면 장평리(새로 이름받은 동네)로 나오는 길을 몰라;;  

30분은 헤메었습니다. ㅠ.ㅠ

청양 청남의 왕진교에서 바라본 하중도와 왕진나루터(우측의 기와모양배수장부터 불룩 튀어나온 부분),

그리고 천정대(뒷쪽산의 가운데 절벽부분)입니다.

 맞은편 저석리쪽에서 바라본 임금바위와 신하바위 그리고 천정대의 정자입니다.

 삼국유사에 이제는 논이 되어버린 호암사와 함께 범바위의 정사암이라고도 불리는 천정대의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천정대 오르는 길입니다.

이 곳은 백제의 산악신앙의 한 단면을 볼 수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저는 이 설명이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실제로 강과 인접한 물의 신앙이라고 봅니다.  백제는 물의 나라입니다.  해상왕국입니다.

이 곳 천정대는 금강과 지천이 만나는 곳으로 풍수상으로 일종의 삼태극의 형국을 하고 있는 곳으로, 

Y자 형태로 생산을 상징하는 여인의 옥문에 해당하는 부분이기도합니다.

실례로 500년 도읍인 하남위례성을 비롯하여, 백제의 모든 수도들이 육군의 공성공격과 바다로 부터의 수군의 침투에 매우 불리한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는 수상(水上)을 장악하고 무역과 해군력이 우수하지 않으면 만들어질 수 없는 도시의 발달 형태입니다.

또한 백제의 마지막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나라의 멸망위기에 백제가 총 동원한 병력으로 황산벌의 육군은 5천인데 비해 

2년여 후 백강구전투에서의 왕자 풍의 수군은 3만을 헤아립니다.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백강유역전투와 주류성을 청양 정산의 두률윤성과 백마강으로 보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또한 청양의 동강리와 백마강을 비롯한 각지의 지명에 白자가 많이 들어간다.  이밖의 당진 석문과 삽교천으로 보는 견해, 호남의 동진강유역으로 보는 견해등이 있다.)

물론 당과 신라의 13만 대군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그리하여 순식간에 수도를 함락당합니다. 

천정대는 물길의 가운데에 위치하는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비가 모여 만든 물들의 근원을 향해 기도하는

제천사상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용의 전설이 깃든 백마강의 시작점입니다.   

그 것으로 천정대는 산악신앙이 아님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곳에서 동쪽 계룡산으로부터 떠 오르는 해와  금강의 물들의 근원을 경배하고 하늘과 강의 상징인 용에서 22담로를 다스리는 임금과 재상의 권위를 찾았을 것입니다.

동네적 견해로 본다면 이 곳은 진산 칠갑산에서 발원하는 모든 물줄기(지천,잉화달,장곡,도림)가 다시 만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이는 제 개인적인 견해임을 밝힙니다. ^^;;)

정사암은 임금,신하바위 윗쪽의 넓고 평평한 부분 전체가 되고 이 곳에 건물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지표조사를 통해 연화문을 비롯한 각종 기와가 수습되었습니다.    

아마도 오늘날의 국회의사당 급의 백제의 상징과 같은 곳이었으니 침략군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고

잔해는 절벽아래 강바닥으로 떨어뜨려, 1300여년 동안 묻히고 떠내려가고 사라졌을 것입니다.

 덩그러니 최근에 지어진 정자가 하나 올려져 있습니다.  

남들이 보면 천정대가 정자나 망루 정도였을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천정대는 삼국유사에는 특유의 설화적 신비주의로 각색을 했으나,

정사암회의를 통해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곳으로 

해상왕국 백제의 중흥을 꿈꾸며, 큰 틀을 짜는 곳이었을 것으로 추측이 가능합니다.

 천정대 정상에서 바라본 왕진나루의 모습입니다.   

과거 사비성이 지어질때 목면 본의리, 정산면 백곡리, 청남면 왕진리 등지에서 많은 량의 기와들이 생산되어 뱃길로 옮겨지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지자체 충청남도를 상징하는 이미지라면 이 이미지가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충남의 대표격인 계룡산과 금강이 한데 어우러진 경치입니다.

 하천변 농업행위 지역입니다.

왕진나루의 창고개부분이 일종의 곶 역할을 해서  그 불룩 튀어나온 부분의 아랫쪽 부터는 유속의 감소등으로 이렇게 많은 량의 토사가 쌓이는 지형이 됩니다.   그래서 백사장이 발달하고, 그 백사장의 윗쪽 둔치에서는 상당한 넓이의 하상농업행위가 이루어집니다.

 하류의 부여쪽 조망입니다.  

백제 수도 사비성의 방어산성이자 낙화암이 있는 부소산성의 끝자락이 보입니다.

 저 기와집도 배수장인가요?

 지천과 금강이 합류하는 부분인데... 소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