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는 우리동네 이발소 아저씨가 무서웠다.
나보다 두살 어렸던 대호라는 친구의 아버지.....
술을 좋아하셨던 아저씨의 목덜미는 항상 붉었는데 내가 처음 이발소에 끌려?갔던 3살때에는 그런 아저씨의 목덜미가 참 무서웠었던 기억이 있다. 엄청 울었었다. 그래도 아랑곳 하지 않고 버티고 꿈틀대던 나를 강제로 붙잡고 바리깡으로 요절내시던 ㅎㅎ 이발소 아저씨.....
고등학교때 까지 이발소 아저씨는 살아계셨었는데, 대전 신탄진 어디에 땅을 사두셨고, 그 쪽으로 이사가신다고 들었었는데,, 그 해에 더욱 마른 모습을 보이시던 아저씨는 안타깝게도 병을 얻으셔서 일찍 세상을 뜨셨다.
어렸을때 가 볼 수 있는 동네의 몇 안되는 시설물 가운데 하나가 이발소 였다.
그 당시 이발소는 겔러리였다.
요즘에야 공공기관들에 좋은 그림들이 많이 걸려서 우리를 즐겁게 하지만, 옛날에야 어디 공공기관 가봤자 박정희대통령사진과 태극기 밖에 없었잖은가.
우리집에는 밀레의 만종과 예수님 그림 두점이 유일 했고, 집 이외의 그림으로 내가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이발소였다. 이발소에는 대숲사이로 물이 흐르고 호랑이와 계곡의 용이 서로 자웅을 겨루는 용호상박그림이 있었다. 노을지는 저녁나절 해를 따라 떠나는 범선과 갈매기가 아름다운 그림도 있었고, 또 인근 부여의 낙화암과 황포돗배 그림도 있었다. 빨래비누로 거품을 낸 거품컵과 면도용 솔, 그리고 마을 전체에 몇개 없는 권총형 드라이기와 면도칼을 비비곤하셨던 가죽판떼기 등등이 최첨단 도구로서 꼼짝없이 30분은 의자에 묶여야 했던 내게 그나마 덜 심심하게 하는 눈 요깃꺼리가 되곤 했었다.
어저께 그 풍경을 다시금 상상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어찌나 반갑던지....
여차 하면 무너질 듯한 풍경이었지만 내부를 살짝 들여다 보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송촌이발소라는 글씨 양쪽 옆으로 두개의 벽화 속 조명은 과거 회색빛 도심풍경에서 빠질 수 없는 청량제 같은 컬러풀 조명머신의 형상화이다. 예전 로마시대에는 이발소소장님(송촌이용원은 원장님)이 곧 의사선생님이셨다나 어쨌다나 피와 머시기를 상징한다는 글을 읽은적이 있다. 중요한 것은 60-70년대 우리나라의 도심 속 대표 심벌로서 회색빛 성장의 그늘 아래 그나마 서민들에게 위로와 휴식을 주는 시간을 상징하는 심벌이었다.
이 곳에서 본 이발소(이용원)의 심벌은 실제 조명이 아닌 회화적 표현으로 마무리를 했다.
친환경적으로 전기를 쓰지 않는 그리고 지금까지도 보존되는 반 영구적 이발소 심벌 그림이 되겠다.
옛날 우리동네 이발소의 페인트 색은 녹색과 회색이 얽히고 설킨 묘한 색이었는데,,, 이 곳 천정의 베니어판은 나무색을 그대로 살린 당시로서는 대단히 세련된 천정이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목수아저씨의 숨결이 느껴지는 수제 이발소 맞춤형 가구가 아직도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아 아름답다. 저 앞쪽에 컵과 면도용 솔이 비치되어 있었고, 그 옆으로 바리깡과 가위들.. 앞쪽의 걸개에는 칼갈이용 가죽이 걸려있었다.
연탄 딸랑 두개 들어가는 난로위로 커다란 주전자 물이 있었고, 그 주전자의 물을 통해 우리는 섬세한 이발소 아저씨의 냉/온수 배합을 통해 얻어낸 따스무리한 물로 머리를 감을 수 있었다.
그 어느 고딕양식이나 로코코양식, 알함브라 궁전의 아치는 보이지 않지만 네모 반듯한 심플한 디자인은
일제시대 적산가옥 이후 대단히 현대적인 콘크리트 구조물로서 이 마을을 대표하는 네모 건물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이발소 주인 아저씨의 감각이 느껴진다.
분명 손수 이렇게 간판자리를 네모반듯하게 옆부분은 이러게 미장하라고 일렀을 께다.
건물을 지을때도 주인 이발소장님의 의도가 충분히 반영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주변 상가들의 쇠락과 더불어 이곳 송촌에서도 이발소의 바리깡 사각거리는 소리가 사라져 버린 지 오래된 듯 하다.
역시 시골에서 유일하게 아직까지 버티며 번창하는 곳은 교회와 절과 같은 종교시설 뿐인가....
이 곳은 송촌마을의 교회건물이다. 그나마 이런 시골 교회들이.... 늙어만 가는 시골마을 어르신들에게 정신적 위안을 주기는 하는 듯 싶다.
좀 송촌이라는 동네의 현실과 동떨어진 현대식 건물이 이질감은 들지만 말이다.
남당리 시내에 들어가 보았다. 항상 반기는 저 나무가 남당 제1슈퍼를 동네 제일로 만들고 있다.
세계 최 고령의 글로벌 기업 코닥은 파산절차를 밟고 있고, 후지필름도 엄청난 인원감축과 뼈를 깎는 구조조정중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시골에서 대표적 브랜드는 코닥과 후지다. 80년대 과감한 투자를 통해 그네들이 걸어주었던 동네 간판들은 모회사가 망하든 어쩌든... 아직은 건재하다. 시골은 그래서 좋다.
라이프 사이클이 길다. 라이프사이클이 긴 것은 친환경적이다. 갈고 나면 모다 쓰레기인데...
노아두어 정겹고, 시간이 멈추어 찌든 우리를 웃게 한다.
어저께 축제를 끝낸 남당항에 들렀다. 그나마 천수만이라는 화수분을 끼고 있는 남당항은 아직 활기가 넘쳐 보인다. 조력발전소가 세워지며 그 생태적 생산에 큰 타격을 입게 될지도 모를 서산과 태안의 가로림만을 생각하니 좀 먹먹하다.
좀 안변하면 안되나? 누구를 위해 변하는것인가?
변화는 누구를 행복하게 하는가? 그 변화가 꼭 하드웨어적 변화여야 하는가?
조력발전소 발전량 만큼 우리가 전기를 덜 쓸 수는 없을까? 어짜피 애들도 많이 안 낳아서 한 이십년 쯤 지나면 그다지 우리나라 경제규모나 인구 수로 봐도 전기 사용율이 많이 늘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 우린 좀 경제적으로 보수적이고 사회적으로는 진보적이었음 좋겠다.
왠지 그게 오늘도 열심히 로드무비를 찍고 있는 우리네 현대인들에게 훨씬 더 행복한 미래를 선사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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