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가이야기/도랑두리번

물탕골~적누저수지 적누천도랑 현대판 화전민들..콘크리트경계를 넘다..

잉화달 2009. 4. 23. 21:54

 

 광금리에는 쇠밭처녀와 넓은밭총각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펼쳐지는 고산굴이 있다.  깊은 굴은 아니지만 대략 10여미터 정도로  충분히 몰래 사랑을 나눌만한 곳이 해발 300여미터 정도에 위치 해 있다.

그 아래가 물탕골.. 이 곳에도 10여미터 정도의 굴이 있고, 그 굴 안쪽의 철광석 사이로 물이 흘러나온다.   

오늘 소개할 곳은 이 곳에서 발원한 물이 적누저수지를 지나 지천으로 흘러드는  적누천이다.

 중간에 농수로를 잠시 본다.  붉다.   쇠물이다.    역시나 쇠밭마을 답다.

백제때과 고려때는 상당량의 쇠를 캐내던 밭이었다고 한다.   

인근의 휴양림의 쇠파니굴이 대략 1-2킬로 정도의 깊이 이고 방이 천개나 있었다는 천뱅이의 숮골, 광대리의 불무골, 승주동의 흙까지 생각해 보면 고대 제철산업의 3대 요소인 철광석/목탄/철가마가 완성된다.

웅진성에서부터 시작하여 사비성까지 200여년의 백제 수도권의 철광산업단지라고 보면 되겠다.

 

이 곳 쇠밭에는 웃쇠밭과 아랫쇠밭으로 도로를 기준으로 나뉘게 되는데 윗쇠밭이 7가구  아랫쇠밭에 8가구 정도 살고 있다.   더러운 생활하수가 흘러나가는 모습이다.

 

 쇠밭일대의 철광석들의 붉은 모습이다.

자연적 지형의 하천도랑을 따라 정화된 물들이 모이는 곳..   

저 앞에 약간 보이는 물이 적누저수지의 시작점이다.

 적누저수지의 상류 물풀지대이다.   맑은 물에 사는 수초들이 보인다.

저수지의 중간 부분이다. .

하늘이 아름다워 물보다 하늘쪽으로 포커스가 맞춰진다. ㅎㅎㅎ

정신차리고 저수지의 물들을 바라본다.    아래에 내려가서 육안으로 확인해 본 물은 매우 깨끗했다.

주변의 낚시꾼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 분들에 대한 계도만 어느 정도 이뤄지면..

수질 유지에는 큰 어려움이 없어보였다.

 잠시 청양에 엄청나게 많은 여름철새인 파랑새를 발견하고...

 저수지의 둑에서 바라본 아랫동네..  고리섬들의 모습이다.  

이 곳의 분지지형은 과거 부족국가를 형성하게 하였고,  마한지방의 유력한 부족국가 중 하나였던 

구로국이 현재의 이곳에 위치했었다.   우측의 마을에서 약간 상류쪽으로 일제가 도굴해가고 이제는 마을이 되어버린 지름 50미터짜리 석총이 있었다.     이름도 석촌이라고 돌담불마을이다. 

 여름이다보니 수문을 조금 열어서 일정량의 물을 내려보내고 있었다.

 졸졸 흐르는 수문의 물들...

 이렇게 모여있었다.  워낙 상류의 물이 깨끗하여, 꽤 고여있음에도 수질이 어느정도 유지된다.

 적누리 마을의 최대의 오염원 가운데 하나인 칠갑농산이다.

물론 지역경제에서 칠갑농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큰 편이다.   동네를 위한 여러 좋은일들도 많이 한다.

그럼에도 하천 입장에서는  쌀과 밀가루를 중심으로 가공되는 식품공장이 반가울리 없다.

마을 분들과의 인터뷰에서는 이 공장에 대한 나름의 반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논둑마다 모두 누렇게 뜬 모습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논둑을 관리하기 힘들어서 제초제를 뿌린다기보다

저 둑 주변에 콩을 심고 가꾸기 위해 미리 제초제를 뿌린다.

대 놓고 콘크리트 길의 경계를 넘어 하천변에 제초제를 뿌리고, 죽은 풀들 위로 콩을 심었다.

이 것이야 말로 현대판 화전이다.    가장 비환경적인 농사이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하고 이 놈의  돈과 연관된, 생존권이라는 미명하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하천의 어두운 구석에 대해,  고민하며

집으로 돌아온 2008년 8월의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