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작별했던 겨울철새들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은.... 마치 찬바람이 불어 다시 꺼내 입은 점퍼 주머니에서 작년 겨울에 넣어 둔 만원짜리 2장을 발견한 것보다 훨씬 더한 반가움이 있습니다.
여름철새였던 파랑새와 꾀꼬리가 모습을 감춘지 한달 정도 되었습니다. 검은댕기해오라기도 몆주 전부터 아니 보이는 것이 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동시에 우르르르 아랫동네 따듯한 나라로 내려갔나 봅니다.
드디어 2만원을 찾은 기쁨보다 더한 겨울철새들과의 만남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얼마전 부터 큰기러기가 왔다고 하고, 쇠오리도 보이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지난 2-3월경에 보았던 반가운 통과철새 물수리(멸종위기2급)가 금강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고픈 배를 달래고 있었습니다.
문제가 좀 있는데.. 오전에 한마리는 그냥 잘 먹었는데.. 오후에 잡은 녀석은 좀 처럼 먹기가 어렵습니다.
식사때마다 와서 건드리는 까치때문인데요.
몇 점 띁어먹었을까나...
까치들이 공격자세를 취합니다. 이거 원 1:1로 맞짱을 뜨자는 건지.. --;;
먹이를 가지고 있는 자세에서는 마땅히 방어하기가 궁색합니다.
부리만으로는 까치의 기동력과 날카로운 공격을 피할 수 없구요. 그렇다고 먹이를 잡고있는 발톱으로 까치를 공격하려 한다면 이야말로 까치가 원하는 것이지요. 그 때 잽싸게 한놈은 도망가고 한놈은 물수리가 놓아둔 먹잇감을 채갈 수 있으니까요.(실제로 까치가 고기를 빼앗는 일은 거의 보지 못햇는데요. 황조롱이부터 부엉이류 말똥가리.. 큰 수리류까지 항상 공격하는 까치의 행동이 영역 방어인지.. 먹이빼앗기 인지 복합적인 이유인지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
아무튼 사나운 표정도 짓고 공격적인 자세도 취해보는데... 영 까치가 겁을 내지 않습니다.
자기 몸집의 5/1도 채 되지 않는 까치의 저 염치없는 빼앗기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사자의 사냥감을 노리는 하이애나떼.. 같다고 할까요.
꼭 뒷쪽에서 꼬리 부분의 공격자세를 취합니다. 골치아픕니다. --;;
뱅뱅 돌면서 물수리를 괴롭힙니다. 역시나 까치를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으이구.. 내가 드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우리는 모릅니다. 무서워서 피하는지 워쩐지..
먹다 남긴 물고기를 들고.. 자리를 뜹니다.
25센티급의 육식성어종으로 맛난 고기 같아보이는데..
간만에 찾은 왕진백사장에서 까치에게 쫒기게 되었습니다.
끈질기게 쫒더군요. --;;
슬퍼보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덩치가 큰 맹금류인 수리류가 머무는 곳들은 과거로 부터 사람들이 많이 살 수있는 여건이 되는 곳입니다. 저 넓직한 몸집이 자유로이 날아다닐 만한 넓은 평야와, 큰 고기가 많이 서식할 수 있는 넓은 강의 하류여야 하는 조건은 인간이 도시나 큰 나라를 이루는 지역과 같은 조건입니다.
철원평야가 그렇고 한강변과 금강변.. 그리고 낙동강변.. 모두가 큰 부족국가였거나 큰 마을이 들어섰던 넓직한 평야와 넓은 강이 있는 곳입니다.
이 곳 원왕진마을의 옛풍경과 관련한 기행문이 있어 하나 소개합니다.
제산 임영휴선생의 시문집인 제산유고(霽山遺稿)에 수록된 남유록(南遊錄)의 청양지역 부분을 잠시 타이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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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 늦봄(1883년 5-6월경)
잠시뒤에(공주 만수동나루의 상인들의 아우성소리가 사라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길래, 손으로 봉창을 걷어올리고 내다보았다. 긴 뚝에 아침 연기가 버드나무를 감쌌는데 노란 꾀꼴새가 울고 있어, 그림에 나오는 시경에 거의 가까웠다.
가벼운 바람이 서늘하게 불어 가볍게 노를 저으며 중류에 이르렀다. 북쪽을 바라보니 앵봉산이 하늘에 치솟았고, 남쪽을 바라보니 계전(닭밭골)이 물가에 다가왔다. 이 곳이 바로 정산땅이다. 분창을 거쳐 푸른 강에 이르렀다. 베개를 밀치고 문을 열어 내다보았더니 아주 번화한 곳이었다. 인가가 즐비하고 나무들이 늘어섰는데, 그 가운데 정자가 하나 있었다. 편액에 몽뢰정이라고 하였는데, 화려한 모습이 또한 장관이었다.
- 제산 임영휴선생의 남유록 가운데 청양 왕진나루를 묘사한 부분 -
(발췌 - 충남지역 누정문학 연구, 허경진 2000 한국문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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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만수동나루는 지금의 공주 검상동 일대가 됩니다. 곰나루에서 아리포를 지나 만수동나루 아랫쪽으로 청양의 신흥리까지는 큰 길이 뚫리기 전까지 강의 양안이 모두 숲으로 둘러 쌓여 인가가 드물고 경치가 아름다웠습니다. 강의 좌안은 백제대로 4차선길이 운암리쪽으로 나면서 마을도 사라지고 꾀꼬리소리도 사라졌지만 아직 2차선 도로공사가 완성되지 않은 우안의 신흥리 붉은흙길에는 올해까지 노란꾀꼬리가 찾아왔었습니다.
양쪽으로 길이 뚫리는 내년에는 금강변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기 어려울 듯 싶습니다.
임영휴 선생이 다녀가신지 130년만에 강의 좌안은 백제대로로 인해 모두 길로 편입되고 절벽이 되어버렸고 조만간 우안에도 또 길이 뚫리게 되네요.
그림에 나온 듯 하다는 극찬의 경치와 꾀꼬리 울음소리는 청남-어천간의 지방도가 뚫리는 내년 쯤 모두 사라질 듯 싶습니다.
대대로 내려오는 독락정의 쥔장이었던 임영휴선생이 배를 타고 연기를 떠나 금강을 따라 수북정까지 여행을 하고 썼던 기행문에 나오는 북쪽 앵봉산과 계전이 보이던 정산땅...
물가에 새로 세워진 다리위에서 본 왕진나루의 모습입니다.
이 곳은 왕진나루터와 원왕진마을 1883년 임영휴선생께서 인가가 즐비하고 번화했다던 그 곳입니다.
강가의 백사장인 배를 대기에 편하였고 뒷굽이의 세찬물살은 이 곳에 이르러 잔잔해졌습니다.
지금은 높다란 둑이 세워져 옛 모습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둑을 배제하는 상상력으로 바라본다면...
왼쪽의 저 마을과 오른쪽의 저 강물이 결국 하나로 연결되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기와집은 몽뢰정을 지었던 조지안의 후손들이 건립한 평양조씨의 사당입니다.
그 사당의 바로 앞 언덕이 그 화려했던 정자 몽뢰정의 터가 됩니다.
과거 그 장관이라던 모습은 이제 상상력으로 밖에 찾아볼 수 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 맘때의 넓직한 들녘과 강의 풍성함을 아는 물수리의 유전자는 변함없이 후손들을 이 물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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