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제'와 '한전제'에 대한 잡생각...
1.임진왜란과 병자호란 - 농업의 붕괴
양란을 겪으며 조선의 산업은 완벽하게 파괴되었습니다.
백성들은 더 이상 믿고 비빌 언덕이 임금이나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선사시대 언제 적에 사라졌던 씨족 사회로의 복귀가 집성촌으로 나타나고,
지방과 지역에서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보겠다며,
촌계와 동계가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2.정전제의 재 등장과 어린도
당시 피폐한 산업의 재건 해법으로
집권 노론 측에서 먼저 "정전제"를 제시하기 시작합니다.
뭐 정전제? 그렇습니다. 역사시험문제로 주나라 편에 나오던 그 사골제도 정전제 말입니다.
모든 토지를 우물모양으로 이해하고,
우물의 한 가운데 네모를 공공의 것으로,
바깥쪽 8개의 네모는 사사로이 쓸 수 있는 것으로 고민했다는... 그 제도.
여기서 드는 의문. 우리나라에서...
바둑판처럼 우물'정'자 처럼 격자 무늬로 나누는게 가능해?
한국의 꼬불꼬불한 골짜기와 계단식 논밭에서 그게 되겠냐는 당연한 질문이지요.
고려도경에도 그려지는 한반도 토지 '다랭이'
그 다랭이 식 토지를 어떻게든 정전제와 부합하게 하려 고민한 것이 漁鱗圖(어린도)입니다.
다랭이논밭은 사실 물고기의 그것을 닮았으니,
생선 비늘을 닮은 지적도 쯤 으로 이야기 하면 될까요?
3.측량을 염두에 둔 축척지도의 제작.
이런 배경에서 정확한 측량과 토지 경계의 구분이 필요해 집니다.
이제 그런 고민에서 기반이 되는 지도들이 제작되기 시작합니다.
정상기의 동국지도는 백리척을 사용했고, 대동여지도는 십리척의 축척을 사용하는 지도가 그 것이지요. 더욱 정밀한 축척을 사용한 이런 지도들은
후기 조선 사회의 토지에 대한, 생산수단에 대한 고민과
중요한 변화 상을 대변하는 상징적이고 직관적인 결과물이지요.
4. 드디어 한전제까지 등장
물고기 비늘 모양이던, 우물 모양이던 다시 정전제로 돌아가서...
임란이 끝나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한백겸의 기자정전론이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정전가행설과 정전난행설
(송시열이 주장했죠)이 농사를 살리는 길이라며
양란 이후 시대 정치의 방법론으로 풍미했습니다.
이후 균전 한전 정전 여전으로 이어지는 田田肯肯(전전긍긍ㅋ) 토지 개혁안이 계속 등장합니다.
이 중 오늘날 함께 고민하고 주시해 볼 수 있는 온고이지신으로는 '한전제'가 있습니다.
영업전이라는 상징적 토지를 전면에 걸고 나타난 성호선생(이익)의 정책. '한전제'
왜냐구요.
대체로 4인 가구를 가족의 최소 단위로 보고
이들에게 살아가는데 있어서
최소한 생존에 필요한 기본 소득
그걸 보장하는 토지를 주고, 그 토지는
거래를 금지하는 정책이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그 처분관리권은 철저하게
국가에 귀속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본소득제'를 전통 역사적 유래로 찾아보면
이 한전론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게 됩니다.
이거 공산주의 아니야? 국가가 뭘 통제한다고?
아직도 남아있는 구닥다리 빨갱이론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균등보장토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오히려 더욱 자유롭게 매매하도록 제안을 했으니...
인권적 측면에서의 배려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5. 그 때도 그랬다.
조선 후기 당시에도 오늘날 처럼 생산기술이
급격히 좋아지던 시기로
좀 과장을 하자면 일종의 초기산업화 시대랄까?.
이앙법을 비롯한 선진농법의 보급으로
혼자서 과거보다 5배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죠.
토마토. 감자. 고구마 신작물이 대거 들아왔죠.
우리 소가 오키나와 물소랑 결혼해서
2배로 일 잘하는 한우 완전체가 되었던 시기 입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의 살림이 나아지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기술의 발달은 지주를 더 부자로 만들고, 서민들까지도 계층화 시킵니다.
모내기농법으로 인해 논에 들어가는 노동이 5/1로 줄어버렸으니, 남는 노동력이 갈데를 잃었죠.
이제 소작일을 못하게 된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분화 하면서 ㅡ 광산의 일꾼으로, 항구의 짐꾼으로, 주막과 객주의 잡부일이라도 찾으면 다행이고,
산적이나 부랑인이 되어버리고 마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6. 결국은 기본소득제. 그 기본은 인권
이후 당시의 리더들은 토지로 대표되는 생산 수단의 독점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제안을 합니다
결국은 온고이지신. - 기본소득제의 뿌리를 찾아서...
기술과 자본의 발달이 사회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진리는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하다는 슬픈 현실. - 다시금 기본소득제를 들고 나온 선각자들의 고민은 결국 성호학파들을 중심으로 한 실학자들의 당대 고민과 그 맥이 닿아있다고 봅니다.
기본소득제의 경우, 이러한 최소한의 인권과 복지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구체적이고 디테일한 고민의 역사가
우리나라에서도 생각보다 오래되었고, 깊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네요.
손가락을 날리다 보면, 근질근질 페북질이 도지니...
최근 대선 후보들 사이에서 일부 회자가 되길래...
그냥 한번 끄적여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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