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터무늬-지명, 땅이름 이야기

[땅이름 산책]전국의 '몽'이 들어가는 지명, 과연 '꿈' 뿐이었을까?

잉화달 2026. 4. 8. 23:47

몽곡리 지명의 형성과 ‘몽(夢)’의 해석에 관한 소고

예산 고덕 몽곡리의 선행 지명 ‘굼실’, 높은뫼, 그리고 한자화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복권승(dilletante@hanmail.net)

 

초록

본고는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몽곡리의 지명 형성과 의미를 검토하고, 특히 ‘몽(夢)’이 단순히 ‘꿈’을 뜻하는 의미 표기인지, 아니면 보다 오래된 토박이 지명 또는 지형 인식의 한자화 결과인지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예산군 공식 지명유래에 따르면 몽곡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여러 자연마을을 병합하여 성립하였으나, 그 이전부터 이미 ‘굼실’ 또는 ‘몽곡’이라 불리던 지역이었다. 또한 상몽리 역시 ‘윗굼실’ 또는 ‘상몽곡’으로 기록되어 있어, ‘굼실/몽곡’ 계열 명칭이 일대의 중심 지명으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높은뫼는 가톨릭 계통 자료에서 현 몽곡리의 옛 지명으로 확인되며, 양반가·무반가 전통과 결부된 공간으로 서술된다. 지역 보도는 여기에 함평이씨 대흥공파의 세거, 종중 땅, 선산, 종택의 기억을 덧붙인다. 본고는 이러한 자료를 종합하여, 몽곡리의 ‘몽’이 선행 지명과 지형 감각, 그리고 집성촌의 한자 문화가 중첩된 결과일 가능성을 검토한다. 특히 ‘굼실’의 ‘굼’이 굽음·휘어짐·굴곡의 형상과 연결되는 현대어의 의미장과 닿아 있다는 점에서, ‘모롱이’ 계열 해석과 같은 방향의 지형적 유추가 가능함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다만 이는 확정적 어원론이 아니라, 공식 지명유래와 현지 전승, 비교 사례를 바탕으로 한 해석적 가설임을 밝힌다.

 

주제어: 예산군 고덕면, 몽곡리, 굼실, 높은뫼, 함평이씨 대흥공파, 지명 한자화, 모롱이

 

1. 서론

지명은 자연지형의 반영일 뿐 아니라 주민의 생활 언어, 행정구역 개편, 후대의 의미 부여가 겹쳐 형성되는 문화적 산물이다. 특히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은 많은 자연마을을 법정리로 재편하는 전환점이었고, 그 과정에서 기존 지명이 그대로 계승되기도 하고 둘 이상의 마을 이름이 조합되기도 하였다. 예산군 고덕면 역시 1914년 부·군·면 폐합으로 성립한 면 단위 행정구역이며, 몽곡리와 오추리의 해석은 이 행정사적 배경 안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예산군청 자료에 따르면 몽곡리는 1914년 여러 자연마을을 병합해 성립하였으나, 그 이전부터 이미 ‘굼실’ 또는 ‘몽곡’이라 불리던 지역이었다. 다시 말해 몽곡리는 1914년에 비로소 ‘몽’자가 새롭게 생성된 합성 지명이 아니라, 더 오래된 지역 명칭을 중심으로 법정리화된 경우에 해당한다. 이는 처음부터 ‘몽성리+곡촌’과 같은 단순 합성 지명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뜻한다.

본고의 목적은 세 가지이다. 첫째, 몽곡리의 형성과 오추리의 형성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밝힌다. 둘째, ‘굼실 또는 몽곡’이라는 병기 자체가 무엇을 시사하는지 검토한다. 셋째, 높은뫼와 함평이씨 대흥공파 세거 전승, 그리고 전국의 비교 지명 사례를 바탕으로 몽곡리의 ‘몽’을 지형 감각과 한자화의 결과로 읽을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따져 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몽=꿈’이라는 표면적 해석을 부정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 표면 아래에 보다 오래된 지명층과 지형 인식이 공존했을 가능성을 검토하는 데 있다.

2. 고덕면의 행정사적 배경과 몽곡리의 성립

예산군청 연혁에 따르면, 고덕면은 1914년 4월 1일 부·군·면 폐합에 따라 도용면 11개 리, 거등면 3개 리, 고산면 21개 동리와 대오지면 하룡리를 병합하여 성립하였다. 이는 몽곡리와 오추리 모두가 근대 행정개편의 결과로 현재의 법정리 틀 안에 편입되었음을 뜻한다.

예산군청 지명유래는 몽곡리를 “본래 덕산군 고산면의 지역으로서 굼실 또는 몽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양금리, 하몽리, 원기리, 두곡리, 주교리와 상몽리, 천변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몽곡리라 하여 예산군 고덕면에 편입되었다”고 설명한다. 같은 자료는 상몽리를 “몽곡리의 윗쪽이 되므로 윗굼실 또는 상몽곡이라 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 두 기록은 ‘굼실/몽곡’이 일대의 중심 지명으로 작용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반면 오추리는 같은 지명유래 자료에서 “오촌, 추동, 지곡 일부를 병합하여 오촌과 추동의 이름을 따서 오추리라 하였다”고 설명된다. 곧 오추리는 전형적인 합성 지명이고, 몽곡리는 기존 중심 지명을 계승한 법정리라는 점에서 양자의 형성 방식은 분명히 구별된다. 이 차이는 몽곡리의 ‘몽’을 해석할 때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표 1] 오추리와 몽곡리의 형성 방식 비교

항목오추리몽곡리
공식 형성 설명 오촌·추동·지곡 일부 병합 후 오촌+추동에서 명칭 취득 양금리·하몽리·원기리·두곡리·주교리와 상몽리·천변리 일부 병합
1914년 이전 선행 명칭 오촌, 추동 등 개별 자연마을 중심 ‘굼실 또는 몽곡’이라는 중심 명칭 존재
형성 유형 전형적 합성 지명 선행 지명 계승형 법정리
해석상 핵심 행정 조합의 결과 기존 지명층과 한자화 문제 검토 필요

 

3. 높은뫼와 몽곡리의 사회·문화적 배경

몽곡리의 지명 해석에서 주목할 공간은 ‘높은뫼’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자료는 복자 이시임 안나가 “충청도 덕산의 높은뫼(현 충남 예산군 고덕면 몽곡리)”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적고 있으며, 그 집안이 본래 무관으로 이름이 있었다고 서술한다. 가톨릭신문 역시 이성지·이성삼 형제를 “충청도 덕산의 높은 뫼(현 예산군 고덕면 몽곡리)” 출신으로 기록한다. 이는 높은뫼가 단순한 전설상의 장소가 아니라 실제 미시 지명으로 오랫동안 전승되어 왔음을 보여 준다.

지역 보도는 여기에 함평이씨 대흥공파의 세거 기억을 더한다. 예스무한 기사는 고덕면 몽곡리 높은뫼를 함평이씨와 연결된 세거지로 소개하고, 오마이뉴스 기사는 높은뫼 선산과 종중 땅, 종택, 종손 거주를 언급한다. 다만 이 자료들은 지역 취재와 구술에 기반한 기사이므로, 본고에서는 공식 지명유래와 동일한 급의 1차 사료로 취급하지 않고 보조 자료로 사용한다. 그럼에도 높은뫼가 양반 집성촌적 성격을 지닌 공간으로 기억된다는 점은 비교적 일관되게 드러난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세거 연대 표현이다. 지역 기사에서는 “600년 가문” 같은 표현이 보이지만, 다른 기사에서는 16세기 초 입향 전승과 연결하는 방식이 나타난다. 따라서 학술적 글쓰기에서는 이를 그대로 단정하기보다, 수백 년 세거 전승이 있는 집성촌 또는 16세기 초 입향 전승을 지닌 집성촌 정도로 완곡하게 정리하는 것이 더 엄밀하다. 이 점은 곧 아래의 ‘한자 미화 가능성’ 논의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4. ‘굼실’과 ‘몽곡’의 관계

몽곡리 해석의 가장 중요한 실마리는 예산군청 지명유래에 적힌 “굼실 또는 몽곡”이라는 병기이다. 이 병기는 두 이름이 서로 전혀 다른 층위가 아니라, 같은 지역을 가리키는 병행 명칭이었음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몽곡은 행정문서가 새로 발명한 이름이 아니라, 이미 지역에서 통용되던 지명 계열이었고, 그 곁에 ‘굼실’이라는 토박이말 또는 구어형 명칭이 함께 놓여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굼실’의 어감이다. 현대어 자료에서 ‘굼실굼실하다’는 작은 것들이 굼뜨게 자꾸 움직이거나, 구불구불 물결을 이루며 넘실거리는 모양을 뜻하고, ‘모롱이’는 산모퉁이의 휘어 둘린 곳, ‘산모퉁이’는 산기슭의 쑥 내민 귀퉁이를 뜻한다. 이 현대적 뜻풀이가 몽곡리 ‘굼실’의 원래 어원을 곧바로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굼실’과 ‘모롱이’ 모두가 굽음·휘어짐·굴곡·돌출이라는 형상 감각과 닿아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따라서 몽곡리의 ‘굼실’을 단지 음상(音象)으로만 보지 않고, 휘어 도는 산자락이나 감기는 골짜기, 혹은 굽어진 지형의 형태를 반영한 이름으로 읽어 볼 여지가 있다. 이 경우 필자가 제안하는 ‘모롱이’ 계열 해석과 ‘굼실’은 서로 충돌하는 설명이 아니라, 오히려 비슷한 지형 감각을 다른 언어 층위에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굼실→굽어 있는 형상”과 “모롱이→휘어 둘린 지형”은 동일한 공간 인식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드러낸 흔적일 수 있다. 다만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조심스러운 의미장 비교이며, 직접적인 어원 증명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5. ‘몽(夢)’의 선택과 한자 미화 가능성

몽곡리의 ‘몽’을 해석할 때에는 두 층위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공식 자료가 확인해 주는 선행 지명 층위, 곧 ‘굼실 또는 몽곡’이라는 오래된 이름의 존재이다. 둘째는 그 이름이 한자 표기 속에서 어떻게 정리되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몽곡리의 ‘몽’은 표면적으로는 ‘꿈’이라는 낭만적 의미를 떠올리게 하지만, 지명에서는 의미보다 음상 대응이나 문자적 품위가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높은뫼의 사회적 배경은 하나의 해석 맥락을 제공한다. 높은뫼는 가톨릭 자료에서 양반가·무반가 전통의 공간으로 서술되며, 지역 보도에서는 함평이씨 대흥공파의 세거지·종중 공간으로 기억된다. 이런 장소에서 토박이 지명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 문식층의 미감과 상징 선택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상정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즉, 이미 존재하던 지형적·구어적 명칭을 후대에 보다 격조 있고 길상적인 글자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夢’자가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집성촌의 사회문화적 배경이 한자 선택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지, “함평이씨 집성촌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夢’자를 썼다”는 식의 단정은 아니다.

이러한 점을 종합하면, 몽곡리의 ‘몽’은 ‘꿈’이라는 뜻 하나로만 읽기보다, 오래된 토박이 지명·지형 감각·후대의 한자 선택이 겹쳐 만들어진 표기라고 보는 편이 더 신중하다. 다시 말해 “몽곡=꿈의 골짜기”라는 해석은 후대적 표면 의미일 수 있으며, 그 아래에는 “굼실/몽곡”이라는 선행 명칭과 굽은 지형을 가리키는 공간 감각이 자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6. 전국 비교 지명 사례

사용자가 앞서 제시했던 전국 사례들 가운데, 이번 최종본에는 공개 출처로 실재 지명과 설명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만 넣었다. 따라서 아래 표는 “몽 자형 지명 모두가 같은 어원”이라는 주장을 위한 표가 아니라, 토박이말·지형 감각·한자 표기의 관계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참고 자료로 이해해야 한다. 몽덕리·몽전·몽선 등은 이번에 신뢰할 만한 공개 근거를 충분히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표에서 제외하였다.

[표 2] 비교 검토를 위한 전국 지명 사례(공개 근거 확인분)

지명위치공개 출처상 설명본고와의 비교 가능성
몽곡리(夢谷里) 충남 예산군 고덕면 ‘굼실 또는 몽곡’의 선행 명칭이 있었고, 1914년 여러 마을을 병합해 법정리화 선행 토박이 지명과 한자 표기가 병존하는 사례
상몽리(上夢里) 충남 예산군 고덕면 ‘윗굼실 또는 상몽곡’이라 기록 ‘굼실/몽곡’이 중심 지명군이었음을 보여 줌
몽금포(夢金浦) 황해남도 용연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먼 굽이(遠구미)→몬구미→몽’의 차음 가능성을 설명 ‘몽’이 지형적 굽이와 관련된 음차일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강한 비교 사례
몽촌(夢村) 서울 송파구 일대 송파구와 올림픽공원 자료는 ‘곰말’이 한자음으로 몽촌이 되었다고 설명 토박이말 명칭이 후대 한자 지명으로 정리된 사례

 

특히 몽금포 사례는 본고의 문제의식과 가장 직접적으로 맞닿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몽금포의 ‘몽금’이 ‘먼 굽이(遠구미)’에서 유래하여 방언형 ‘몬구미’, 차음 표기 ‘夢仇味’, 그리고 축약된 ‘몽금’으로 변했다고 설명한다. 이는 ‘몽’자가 실제 지형의 굽이와 관련된 토박이말 요소를 한자화한 결과일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비교 근거다. 몽곡리의 경우 이를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몽 자형 한자 지명이 반드시 꿈 설화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은 분명히 시사한다.

몽촌 역시 흥미롭다. 송파구와 올림픽공원 자료는 몽촌이 ‘곰말’에서 한자음으로 바뀐 이름이라고 설명한다. 이 사례는 몽곡리와 어원 자체가 같다는 뜻이 아니라, 토박이말 지명이 후대에 한자 지명으로 정리되는 일반 원리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참고 가치가 있다. 몽곡리의 ‘굼실 또는 몽곡’ 역시 이와 같은 이중 명명 구조를 지닌 사례로 볼 수 있다.


7. 결론

몽곡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여러 자연마을이 병합되어 성립한 법정리이지만, 그 이름 자체는 이미 존재하던 ‘굼실 또는 몽곡’이라는 선행 명칭을 계승한 것이다. 또한 상몽리의 ‘윗굼실 또는 상몽곡’ 기록은 ‘굼실/몽곡’이 일대의 중심 지명군이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몽곡리의 ‘몽’은 단순한 근대 행정 조합의 부산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높은뫼는 가톨릭 자료에서 현 몽곡리의 옛 지명으로 확인되며, 양반가·무반가 전통의 공간으로 제시된다. 지역 보도는 여기에 함평이씨 대흥공파의 세거, 선산, 종중 땅, 종택의 기억을 덧붙인다. 이는 몽곡리의 한자화 과정에 집성촌의 문식성과 상징 감각이 일정 부분 작용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다만 이 부분은 직접 사료로 입증된 결론이 아니라, 지역 배경을 통해 조심스럽게 도출되는 해석 맥락이다.

또한 ‘굼실’의 ‘굼’은 현대어의 보조적 의미장 비교에서 보듯 굽음·휘어짐·구불거림의 형상과 닿아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모롱이’ 계열 해석과도 같은 방향의 지형적 상상력을 제공한다. 따라서 몽곡리의 ‘몽’은 선행 지명, 지형 감각, 높은뫼의 장소성, 후대 한자 문화가 중첩된 결과로 읽는 것이 가장 신중하다. 곧 몽곡리는 단순한 “꿈의 골짜기”가 아니라, 굽어든 지형을 품은 오래된 이름이 후대에 ‘夢谷’으로 정착한 사례일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할 수 있다.


주 1. 예산군청 연혁은 고덕면이 1914년 4월 1일 부·군·면 폐합으로 성립했다고 설명한다. 몽곡리와 오추리 해석은 이 행정사적 틀 안에서 검토해야 한다.

주 2. 예산군청 지명유래는 몽곡리를 “굼실 또는 몽곡”이라 하던 곳으로, 상몽리를 “윗굼실 또는 상몽곡”이라 하던 곳으로 설명한다. 이는 ‘굼실/몽곡’이 일대의 중심 지명 요소였음을 보여 준다.

주 3. 같은 자료에서 오추리는 오촌·추동·지곡 일부를 병합하여 오촌과 추동의 이름을 따서 만든 지명으로 설명된다. 몽곡리와 달리 전형적인 합성 지명이다.

주 4. 이시임 안나와 이성지·이성삼 형제 관련 가톨릭 자료는 높은뫼를 “현 예산군 고덕면 몽곡리”로 비정하며, 양반 집안 또는 무관 전통과 연결해 서술한다. 높은뫼의 실재성과 사회적 배경을 보여 주는 자료다.

주 5. 함평이씨 대흥공파의 세거, 선산, 종중 땅, 종택에 관한 설명은 지역 기사에서 확인되지만, 이는 구술과 현지 취재에 기반한 보도이므로 1차 사료와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본고에서는 집성촌의 사회적 기억을 보여 주는 보조 자료로만 활용하였다.

주 6. ‘굼실굼실하다’, ‘모롱이’, ‘산모퉁이’의 뜻풀이는 현대 국어의 의미장을 비교하는 보조 자료일 뿐, 몽곡리 ‘굼실’의 직접 어원을 증명하는 자료는 아니다. 본고는 이를 “굽음·휘어짐·굴곡”이라는 형상 감각의 비교 자료로만 사용한다.

주 7. 몽금포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가 ‘먼 굽이→몬구미→몽’의 차음 가능성을 설명하는 드문 사례다. 본고는 이를 몽곡리와 동일 어원으로 단정하지 않고, ‘몽 자형 한자 지명의 비교 사례’로만 활용한다.

주 8. 몽촌은 송파구와 올림픽공원 자료에서 ‘곰말’이 한자음으로 바뀐 지명으로 설명된다. 이는 토박이말 지명이 후대에 한자 지명으로 정리되는 일반 원리를 보여 준다.


참고문헌

예산군청, 「지명유래」, 고덕면 읍면자료실. 몽곡리·상몽리·오추리 항목.

예산군청, 「연혁」, 고덕면 읍면안내. 1914년 고덕면 성립 관련 자료.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124위 복자 약전: 이시임 안나」. 높은뫼(현 예산군 고덕면 몽곡리) 관련 기술.

가톨릭신문, 「[신 순교혈사] 동정 지키려 노력하다 뱃사공 아내가 돼버린 이시임 안나」. 높은뫼 관련 기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몽금포」. ‘먼 굽이→몬구미→몽’ 계열 설명 수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몽금포 사구」. 몽금포 명칭 유래의 보강 자료.

송파구청, 「지명유래: 몽촌(夢村)」. ‘곰말’과 몽촌 관련 설명 수록.

올림픽공원, 「몽촌역사이야기」. 곰말다리와 몽촌 명칭 설명 수록.

Wordrow 사전 검색 결과, 「굼실굼실하다」, 「모롱이」, 「산모퉁이」. 현대어 의미장 비교를 위한 보조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