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터무늬-지명, 땅이름 이야기

도랫말 돌여울 돌래골 돌꾹지 두구리산 도로뜸 돌래재, 석탄행 - 이존오

잉화달 2026. 4. 23. 07:52

오래전부터 지명을 볼 때, 그것을 그저 땅의 이름으로만 읽지 않았다.
어떤 지명은 모양을 말하고, 어떤 지명은 깊이와 높이를 말하며, 또 어떤 지명은 그곳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움직임을 말한다.

특히 마음이 가는 것은 바로 이 마지막 갈래이다. 곧 땅과 물이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돌고, 굽이치고, 꺾이고, 감기며, 때로는 되도는 형상으로 읽히는 지명들이다. 도라말, 도랫말, 돌여울, 돌래골, 돌꼭지, 두구미, 두구리산, 도로뜸, 돌내재 같은 이름들을 만나면 나는 늘 그 속에서 단순한 명칭 이상의 것을 본다. 그것은 사물의 겉모양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작용하는 힘의 방향이고, 물길과 바람길이 남긴 회전의 기억이며, 사람들이 몸으로 겪어 온 운동의 감각이다.

 

이를테면 ‘돌’이라는 소리만 해도 그렇다.
이것을 무조건 돌멩이의 돌로만 받아들이면, 이름이 품고 있는 더 깊은 숨결을 놓치기 쉽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돌이 맞을 것이다. 바위가 많고, 자갈이 드러나고, 돌이 물길을 가르며 놓인 자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이름들은 단순히 돌의 물성만으로는 다 풀리지 않는다. 그 속에는 분명히 돌다, 되돌다, 휘돌다, 굽이치다의 감각이 함께 살아 있다. 나는 이 대목이 무척 중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지명은 흔히 사물의 정태적 모습보다, 오히려 사람들이 반복해서 체감한 움직임의 특징을 더 오래 붙들어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라말이나 도랫말 같은 이름을 볼 때면, 먼저 그곳이 한번 감겨 들어가는 자리였을까를 생각한다.
돌여울이라면 돌이 많은 여울이었는지보다도, 물이 한번 휘돌며 힘을 일으키는 여울이었는지를 먼저 떠올린다.

돌꼭지라면 돌아 모이는 끝머리, 혹은 회전하며 솟아나는 지형의 꼭짓점 같은 형상이 겹쳐 보이고,

두구리산이나 두구미 같은 이름에서는 둥글게 말리거나 고리처럼 감기는 지세의 기운이 느껴진다.

돌래골과 도로뜸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정확한 형성 과정을 단정할 수는 없어도, 그 이름들이 공통적으로 곧게 뻗기보다 한 번 돌고, 감기고, 틀어지는 공간감을 품고 있다는 점만큼은 쉽게 지나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왕진나루 인근의 돌여울, 곧 석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 문화원 책을 쓰며 정리해 둔 자료를 다시 들춰 보면, 이존오의 「석탄행」은 비록 시의 언어로 꾸며져 있지만, 왕진과 창강, 낙화암으로 이어지는 금강 물길의 표정과 주변 풍광을 상당히 생생하게 보여 준다.

시 속에는 백사장과 줄지어 놓인 암석, 이무기굴을 떠올리게 하는 물자리, 돌부처와 절벽, 그리고 남으로 돌며 더욱 그윽해지는 뱃길이 나온다. 나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석탄이 단순히 ‘돌 여울’이라는 번역어 하나로 닫히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그곳은 돌이 있는 여울이면서 동시에 물이 도는 여울, 돌에 부딪힌 흐름이 한번 말리며 난류를 만드는 자리였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마을 어르신의 말에도 “뒷굽이 물살은 물이 도니께 쎘어”라는 표현이 남아 있다. 이 한마디는 문헌의 수사보다 오히려 더 정확하게 그곳의 본질을 전한다.

 

왕진나루의 기억 또한 이 회전의 의미망을 더 두텁게 한다.
왕지진이라는 나루가 있었고, 지금도 원왕진에서는 칠석이면 용왕제를 지내며, 물속 깊은 골구레와 이무기굴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사실은, 이 물길이 단순한 통과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용울음을 지나 백사장을 만들고, 그 모퉁이 바라터에 이르러 물길이 다시 성질을 바꾸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운동 서사다. 배를 띄우는 사람들에게 이런 물의 움직임은 단지 구경거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잘못 읽으면 위험하고, 잘 읽으면 안심하고 지나갈 수 있는 실제의 힘이었다. 그래서 너우기배가 오르내리고, 곡식이 실리고, 장시가 열리던 왕진나루의 번성도 결국은 이 물길의 성질을 몸으로 읽어낸 사람들 위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자료를 읽고 현장을 떠올릴 때마다, 우리 조상들이 참으로 움직임에 민감한 사람들이었다고 느낀다.
그들은 물을 단지 물이라고만 보지 않았다. 물이 어디서 세지는지, 어디서 돈다는지, 어디서 모래를 쌓고, 어디서 깊은 골을 파며, 어디서 배를 받쳐 주고, 어디서 뒤집을 수 있는지를 몸으로 알았다. 그리고 그런 체감을 지명 속에 남겨 두었다.

그러니 도라말, 돌여울, 돌래골, 돌내재 같은 이름은 단지 발음이 비슷한 말들의 우연한 무리가 아니다. 그것은 한 지역 사람들이 오랫동안 돌고 굽이치는 지형과 물길을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보여 주는 생활어의 퇴적층이다.

 

이런 이름들을 붙잡다 보면, 나는 지명이 단지 고정된 명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지명은 동사에서 멀지 않다. 특히 이런 회전 계열의 이름들은 더더욱 그렇다. 그 속에는 ‘있다’보다 ‘돌다’가, ‘놓이다’보다 ‘감기다’가, ‘멈추다’보다 ‘굽이치다’가 더 강하게 살아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계열을 임시로라도 ‘운동과 회전망’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것은 하나의 엄밀한 어원 체계라기보다,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감지되는 움직임의 의미망이다.

어떤 이름은 돌의 형상에서 출발했을 수 있고, 또 어떤 이름은 돌다의 운동감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둘은 자주 겹쳐지고 포개진다. 돌이 있는 곳에 물은 돌기 쉽고, 물이 도는 곳에는 바위와 모래와 절벽의 형상이 함께 기억되기 때문이다.

결국 나에게 지명은, 땅이 스스로 말해 놓은 기록에 가깝다.
그 가운데서도 도라말, 도랫말, 돌여울, 돌꼭지, 두구리산, 돌래골, 도로뜸 같은 이름들은 유독 동적인 세계를 품고 있다.

그곳에서는 땅도 가만있지 않고, 물도 곧게만 흐르지 않는다. 무엇인가 한번 감기고, 돌아 나가고, 휘돌며, 그 힘이 이름으로 굳는다. 왕진의 돌여울과 석탄 또한 바로 그런 자리였다. 돌과 물이 만나 회전을 만들고, 그 회전이 사람들의 기억과 삶을 붙들었으며, 끝내 한 줄의 시가 되고 한 마을의 이름이 되었다. 나는 그 이름들을 읽을 때마다, 지명이야말로 가장 오래된 현장 기록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땅의 모양을 적은 기록이기 전에, 흐름과 힘을 적어 둔 기록,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2009년 경의 돌여울과 왕진나루 풍경 => 과거의 돌여울의 모습은 사라지고 모래채취의 흔적이 독특한 지형을 형성했었다. 

오늘날은 4대강 공사로 백제보가 만들어진 이후 전혀 다른 그저 평범한 물이 가득한 강의 모습을 보인다. 

 

의미망핵심 감각해당 어휘 및 용례해석

운동과
회전망
돌다, 굽이치다, 감기다, 되돌다 도라말, 도랫말, 돌꼭지, 두구미, 두구리산, 돌래골, 도로뜸, 돌내재 지형과 물길의 회전성, 굽이침, 선회, 감김을 드러내는 이름들. ‘돌(石)’의 형상과 ‘돌다’의 운동감이 겹쳐 작동하는 경우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