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어우러짐이 빚어낸 영혼의 꼴?
게으른 저도 매일 아침 거울 앞에 섭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제 ‘얼굴’을 마주합니다.
하지만 바쁜 아침마다 그 얼굴이 무엇을 뜻하는지 깊이 묻는 일은 드뭅니다. 정시 출근의 강박 앞에서 현대인의 얼굴은 대개 그저 씻고, 닦고, 지나쳐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국문학이나 우리말 풀이에서는 흔히 ‘얼’을 정신으로, ‘굴’ 또는 ‘꼴’을 모양으로 보아, 얼굴을 ‘정신의 모습’쯤으로 설명하곤 합니다. 참 아름다운 풀이입니다. 그런데 지명과 오래 씨름하다 보면, 이 ‘얼’이라는 말이 단순히 개인 안에 갇힌 정신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지명을 따라 산과 들, 골짜기와 마을 이름을 오래 들여다보며 느낀 것은 이렇습니다.
‘얼’은 어쩌면 ‘어우러짐’의 감각과 깊이 닿아 있는 말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것들이 제각각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부딪치고 섞이고 스며들어 하나의 결을 이루는 상태. 그 어울림 속에서 비로소 생겨나는 생명의 기운. 저는 그것을 ‘얼’이라는 말 안에서 읽어보고 싶습니다.
‘얼’이 들었다는 말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정신이 또렷해졌다는 뜻만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과 관계 맺는 법을 알고, 타인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자기 안에만 갇혀 있던 존재가 바깥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그렇게 보면 ‘어른’이란 단지 나이를 먹은 사람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이 결혼을 통해 어우러지면 어우러진 결과물로 '어른'이며,
오랜 시간 세상과 부대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길을 익히고, 나와 남 사이의 간격을 조율할 줄 알게 된 사람입니다.
반대로 ‘어린이(애)’는 어우러져 나온 새로운 객체입니다. 앞으로 무수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얼을 길러갈 존재입니다.
물론 이런 풀이는 엄밀한 어원학이라기보다, 우리말과 지명 속에서 길어 올린 하나의 민속적 상상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상은 뜻밖에도 동서양의 오래된 사유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영어의 ‘idiot’이라는 말은 본래 그리스어 ‘idios’에서 왔다고 합니다. ‘혼자만의’, ‘사적인’이라는 뜻을 품은 말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단순히 지능이 낮은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의 삶에 참여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사람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말의 ‘어리석다’도 새삼 다르게 들립니다.
혹시 어리석음이란, 얼이 적은(부족한) 상태, 곧 어우러짐의 감각이 모자란 상태를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요. 타인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우리’라는 넓은 관계를 잊은 채, 오직 나 하나의 세계에만 갇혀 있는 상태 말입니다.
그렇다면 얼굴은 단순한 생김새가 아닙니다.
한 사람이 세상과 얼마나 깊이 어우러져 왔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입니다. 내가 누구와 손을 잡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이웃을 대했는지,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을 외면했는지, 그 모든 관계의 시간이 얼굴에 조금씩 배어납니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은 더 정직해집니다.
이목구비의 잘나고 못남보다, 그 사람이 세상과 맺어온 관계의 결이 먼저 보입니다. 누군가의 얼굴에서는 넉넉함이 느껴지고, 누군가의 얼굴에서는 모진 고립이 느껴집니다. 그것은 피부의 주름만이 아니라, 살아온 어우러짐의 자국일 것입니다.
그러니 아름다운 얼굴이란 꼭 잘생긴 얼굴만은 아닙니다.
타자와 어울리고, 이웃과 나누고, 세상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함께 느끼며 살아온 사람의 얼굴. 그 안에서 길어 올린 넉넉한 얼이 은근히 배어나는 얼굴. 저는 그런 얼굴이야말로 참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거울 속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요.
혹시 나만의 성을 높이 쌓느라, 점점 더 고립된 얼굴을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요.
개인화의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어쩌면 ‘얼’인지도 모릅니다. 나를 나답게 하면서도, 우리와 함께 숨 쉬게 하는 어우러짐의 힘 말입니다.
얼굴은 결국 내가 세상과 어울려 살아온 방식의 꼴입니다.
그러니 거울 앞에서 잠시 멈춰 묻고 싶습니다.
내 얼굴에는 지금 어떤 얼이 깃들어 있는가.
그리고 나는 오늘, 누구와 어떻게 어우러질 것인가......
(강의 써먹던 것도 글로 써야... 적자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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