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묘·마·뫼, 그 묘한 울림. ㅡ 음훈공명
모서리의 모는 뾰족하게 맺힌 자리입니다.
모서리가 세 개면 세모가 되고, 네 개면 네모가 됩니다.
모내기의 모는 흙을 뚫고 올라온 어린 생명입니다.
새싹 묘苗는 땅 위로 솟는 생명의 시작입니다.
뫼는 땅이 크게 솟은 자리입니다.
묘墓는 흙을 모아 만든 작은 뫼입니다.
마을은 사람들이 모여 이룬 울입니다.
마을마당이 산 사람들의 모이마당이라면,
묫마당은 죽은 이의 장소에 산 사람들이 다시 모여 자유롭게 어우러지던 마당입니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서는 묫마당을 그냥 모이마당이라고 불렀습니다.
조상이 누운 자리였지만, 동시에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였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소풍 장소였고, 어른들에게는 문중과 마을의 일이 이어지는 자리였고,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한 풍경 안에서 만나는 마당이었습니다.
제 초등학교 시절 단골 소풍지도 청양군 대치면 광대리 원동의 경주최씨 명실공후충렬공파 묫마당, 곧 모이마당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묘합니다.
묘가 있는 마당이었는데, 우리는 거기서 뛰놀고, 먹고, 웃고, 모였습니다.
또 하나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형님이 다니신 고등학교 교가 첫 소절은 “늦을라 어서 뫼자”였습니다. 제가 다닐 때는 그 말이 “모이자”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뫼자와 모이자.
말은 바뀌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감각은 이어져 있었습니다.
어서 모이라는 말, 함께하자는 말, 흩어진 사람들이 한자리로 오라는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말들은 서로 다른 길에서 왔어도, 우리 삶의 자리에서는 한 울림판 위에 놓입니다.
모서리의 모,
모내기의 모,
새싹 묘苗,
산의 뫼,
봉분의 묘墓,
마을의 모임,
묫마당의 모이마당.
어원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전처럼만 말을 쓰지 않습니다.
사람은 산에서 살고, 논에서 일하고, 묘 앞에 모이고, 마을에서 늙어갑니다.
말은 그 삶의 자리에서 서로 부딪히고, 겹치고, 오래 울립니다.
그 울림을 저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불러봅니다.
음훈공명.
말의 뿌리를 캐는 일도 중요하지만,
말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울렸는지를 듣는 일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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