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충동질(충청도식동네걷기)

갈머리 관촌마을과 인연을 맺으며 읽는 이문구선생님의 글들...

잉화달 2020. 4. 26. 23:11

못자리 버무리며 무살미 하기 앞서 그나마 날포를 못 넘기며 긋덧 가랑비만 서너물 한 뒤, 보리누름해서 부터 입때껏 구름마져 드물었으니, 일 반찬 하게 열무라도 삐어본다고, 아무리 씨앗을 배게 부어도 푸서리 틈에 개똥차모이 움나듯 씨 서는게 드물어, 아예 한갓지게 버림치로 돌려 묵정이 만들고, 그 위에 호랑이 새끼 쳐도 모르게 깃고 욱은 바랭이 개비름 따위나 베어다가 돼지 참주는 집만 해도 여러가구였다. 

 

(고)이문구선생님의 우리동네 김씨를 읽는다.   

관촌수필만 읽었는데, 요즘 보령 관촌마을과 함께 도모하는 일들이 있어서, 이문구선생님 글들은 되도록 읽고 풀어봐야겠다 싶어서...

 

관촌수필을 읽은지가 얼마만인가?  90년대 초반? 한겨레신문에 여름철 보령을 소개하면서 관촌수필을 연계해 취재한 기사를 읽은적이 있었다.   그 글을 계기로 옆동네 이문구선생님의 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특히 행운유수의 옹점이의 이야기가 지금도 가장 인상깊다. 

 

위에 쓴 글을 곱씹어 본다.  어찌 저런 표현들이 가능하셨을까나...  

읽는 사람들의 독해력은 안중에도 없으시다.ㅋㅋㅋ  

그저 충청도의 그 시절 특히 1942년 1967년과 1978년 봄가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저 지극히 충청도스러운 글귀로 만들어가는 표현들을 읽으면서 어찌나 절절하게 가슴으로 와 닿았을까... 

나도 1978년 가뭄만큼은 기억을 하니...  그래도 저 글들이 공감으로 절절하게 읽혔다.  

국민(초등)학 1학년때 그나마 천수답들은 차례모나 두레모 조차 할 수 없어서 모두 타들어갔고, 

그 귀한 양수기라도 들이대고 모내기를 할 수 있었던 유일한 텃논이 있었으니, 

어른들 틈에 모쟁이(볏모를 모심는 분들께 나눠드리는 허드렛 일)를 하겠다고 논바닥을 휘젖고 

다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찌 보면 시대의 변화가 급격하던 시기를 거치며 그런 공감이나마 누릴 수 있는 시골 정서의 경험이 있으니 

난 참 행운아 이기도 한거다.   

이문구선생님의 생가가 있는 갈머리 관촌마을 뒤로 아파트 숲이 생겼다.  다행이 한산이씨 종중에서 종중 소유의 숲을 시에 기증해주시고 덕분에 시민들의 쉼터로 관촌마을의 풍광이 보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