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터무늬-지명, 땅이름 이야기

충청도의 방언 '이더러'와 가장 마이크로한 미시적 지명 '이더러'

잉화달 2026. 4. 29. 00:45

이더러, 길 건너, 또는 길 건너 모롱이에 남은 말

충남 서부의 마을말 가운데는 문헌에 잘 오르지 못했으나, 어르신들의 입에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살아 있던 말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이더러”다.

처음 들으면 낯설다. 표준어 문장 속의 “이더러, 저더러”처럼 누군가에게 무엇을 말한다는 뜻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홍성·예산·청양 일대의 생활방언 속에서 이 말은 조금 다른 공간감을 지닌다. “이더러”는 단순히 ‘이웃’이라는 뜻만도 아니고, 단순히 ‘저쪽’이라는 뜻만도 아니다. 말하는 사람의 자리에서 아주 멀지는 않지만, 바로 붙어 있는 것도 아닌 곳. 길 하나를 건너거나, 모롱이를 살짝 돌아, 눈과 발길이 닿는 가까운 생활권의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홍성군 홍동면 신기리에는 “이더러샘”이 있다. 지금은 마을축제와 용왕제의 이름으로도 남아 있는 샘이다. 이 말에 대해 현지에서는 “이쪽 돌아”의 줄임말로 풀이하기도 한다. 곧 “여기서 이쪽으로 돌아가면 있는 샘”이라는 감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설명이 단순한 언어풀이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실제 위치를 놓고 보면, 이더러샘은 마을의 기준점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외딴 샘이라기보다, 길과 모롱이, 집터와 논밭 사이에서 “돌아 닿는” 가까운 샘의 성격을 갖는다.

청양군 대치면 주정1리의 사례도 이와 닮아 있다. 어린 시절 길 건너 모롱이에 사시던 대모님을 “이더러대모”, 또는 “이더러댁”으로 불렀다는 기억은 단순한 호칭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 댁은 멀리 떨어진 집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바로 옆집도 아니었다. 집 앞에서 길을 건너고, 모롱이를 살짝 돌아 바라보이는 가까운 이웃집이었다. 그러니 “이더러댁”은 곧 “이쪽 돌아 있는 댁”, “이 길 건너 돌아 닿는 가까운 이웃집”이라는 공간감과 관계감이 겹쳐진 이름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더러”가 사회적 관계어이면서 동시에 공간어라는 점이다. 예산말 자료에서는 “이더러”를 이웃집을 뜻하는 말로 설명한다. 홍성 신기리의 이더러샘에서는 “이쪽 돌아”라는 공간 풀이가 붙는다. 이 둘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생활세계의 두 얼굴로 보인다. 마을에서 이웃이란 추상적인 사회관계가 아니었다. 길 하나 건너 있고, 둠벙 하나 지나 있고, 모롱이 하나 돌면 만나는 구체적인 장소였다. 그러므로 ‘이웃’은 곧 ‘공간’이었고, ‘공간’은 곧 ‘관계’였다.

“이더러”라는 말에는 충청도식 거리감이 들어 있다. 아주 가깝지만 함부로 밀착하지 않는 거리, 멀지는 않지만 한 번 돌아가야 닿는 거리, 말 한마디로 부르면 알 수 있는 생활권의 거리다. 이 말이 큰 행정지명으로 남지 못한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이더러”는 군지나 지명총람에 오를 만한 큰 이름이 아니라, 집과 집 사이, 샘과 마을 사이, 길과 모롱이 사이에서 쓰이던 미시적 생활지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말은 지도보다 입에 먼저 남았다. 공식문서보다 기억에 먼저 남았다. 아이들이 “이더러댁”이라 부르고, 어른들이 “이더러샘”이라 말하던 그 순간, 마을의 작은 공간은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이름을 얻은 공간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관계의 자리로 바뀌었다.

지명을 연구할 때 우리는 흔히 큰 산, 큰 강, 큰 고개, 큰 마을 이름을 먼저 찾는다. 그러나 실제 사람들의 삶은 그런 큰 이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 산 너머”보다 “저 모롱이 돌아”, “저 들 건너”보다 “길 건너 그 집”을 더 자주 말하며 살았다. 밥을 빌리러 가고, 소식을 전하러 가고, 아이를 맡기러 가고, 물을 길으러 가던 생활의 동선 속에서 말은 생겨났다.

그런 점에서 “이더러”는 충남 서부 생활방언권의 귀한 미시공간어로 볼 수 있다. 아직은 홍성 신기리 이더러샘과 예산말 자료, 그리고 청양 주정1리의 구술기억 정도가 서로를 비추고 있을 뿐이다. 전국적으로 넓게 분포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백제문화권의 오래된 언어층이라고 곧장 말하기도 조심스럽다. 그러나 적어도 홍성·예산·청양을 잇는 충남 서부 생활권 안에서, 이 말이 “가까운 이웃”과 “이쪽 돌아 닿는 공간”을 함께 품은 말이었다는 점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이더러.

작은 말이다.
그러나 그 작은 말 안에는 길 하나, 모롱이 하나, 샘 하나, 이웃집 하나가 들어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던 거리감과 정감이 함께 남아 있다.

이런 말은 사라지면 다시 만들기 어렵다.
지도에는 없고, 문헌에는 희미하고, 검색엔진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 “우리 동네에도 이더러가 있었다”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은 다시 길을 찾는다.

돌아가면 있는 곳.
멀지 않지만 한 번 돌아야 닿는 곳.
남의 집이지만 아주 남은 아닌 곳.

그곳이 바로, 이더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