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터무늬-지명, 땅이름 이야기

[땅이름 산책] 산직말, 산직골 지명 그리고 나무, 나무를 일컫는 말들

잉화달 2026. 4. 30. 15:32

[땅이름 산책] 산직말과 산직골, 산을 지키던 사람들의 마을

옛날 산은 그저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산은 밥을 짓는 곳이었고, 방을 덥히는 곳이었고, 겨울을 나는 곳이었습니다. 전기보일러도, 기름보일러도, 도시가스도 없던 시절에 나무는 곧 생존의 연료였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산에 올라가 아무 나무나 베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산에는 주인이 있었습니다. 개인 산도 있었고, 종중산도 있었고, 마을산도 있었고, 국가나 공공의 성격을 가진 산도 있었습니다. 내 산, 내 임야가 없는 사람에게 산은 가까우면서도 먼 곳이었습니다. 눈앞에 나무가 있어도 함부로 손댈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사람 사는 일은 늘 법과 금지만으로 굴러가지는 않습니다.
산 주인도, 마을도, 산을 지키는 사람도 대개는 알았을 겁니다. 사람은 불을 때야 살고, 밥을 지어야 하고, 겨울을 넘겨야 한다는 것을요.

그래서 살아 있는 큰 나무를 베는 일은 엄하게 막되, 벌목 뒤 남은 껍질이나 잔가지, 이미 수명을 다한 그루터기, 떨어진 낙엽, 거룩 따위는 일정한 범위 안에서 관용적으로 허용되기도 했습니다. 산에서 나는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는 땔감이었고, 깔거리였고, 거름이었고, 생활이었습니다.

바로 그 경계에 ‘산직’이 있었습니다.

산직은 말 그대로 산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산을 관리하고, 함부로 벌목하지 못하게 살피고, 산불을 조심시키고, 산 주인이나 종중, 관청의 뜻을 대신 전하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공공 산림을 돌보는 하위 관리적 성격을 띠기도 했고, 또 역참과 관련한 역토나 역의 운영 속에서도 산직이라는 직분이 나타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니 산직은 단순한 감시자가 아니었습니다.
산의 소유와 이용, 생존과 규칙 사이를 조율하던 생활 현장의 직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전국 곳곳에 남아 있는 ‘산직말’, ‘산직골’ 같은 지명은 그냥 산골짜기 이름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그곳에는 산을 지키던 사람이 살았거나, 산직의 역할을 맡은 집이 있었거나, 산림 관리와 관련된 생활권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산직말과 산직골을 한 가지 뜻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곳은 실제 산지기 마을이었을 수 있고, 어떤 곳은 특정 인물의 직역이 지명화된 것일 수 있으며, 어떤 곳은 종중산이나 관산, 역토와 관련된 관리 공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여러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산직말·산직골이라는 이름은 적어도 옛 사람들이 산을 ‘관리되는 생계 공간’으로 인식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산직말과 산직골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 나무 이야기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산직은 산을 지키던 사람이고, 산을 지킨다는 것은 곧 나무를 지키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러니 나무를 둘러싼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거 나무와 숲에 대한 의존이 높고 쓰임새가 많았다는 사실은, 조상들이 쓰셨던 나무의 부분별 명칭만 보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냥 “나무”가 아니었습니다.

새로 돋는 것은 눈이고, 움이고, 싹이었습니다.
길게 뻗어 나가는 것은 넌출이고, 덩굴이고, 넝쿨이었습니다.
가지 끝과 줄기의 끝에는 우듬지, 우둠치 같은 말이 붙었습니다.
줄기에는 줄거리, 동거리 같은 말이 있었고, 마디지고 뭉친 곳에는 옹이, 웅우리 같은 말이 있었습니다.
베고 남은 밑동은 그루요 그루터기였고, 속살과 중심에는 고갱이와 알심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떨어져 흩어진 잎 따위는 고록, 거록, 꺼록처럼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가까웠다는 뜻입니다.
자주

나무를 모르는 사람은 그냥 “나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나무에 기대 살던 사람은 우듬지와 우둠치를 나누고, 삭정이와 줄거리를 나누고, 그루와 그루터기를 나누고, 고갱이와 알심을 나눕니다.

어느 것은 불쏘시개가 되고, 어느 것은 오래 탑니다.
어느 것은 지게에 지고 오기 좋고, 어느 것은 도끼질을 해야 합니다.
어느 것은 썩어 거름이 되고, 어느 것은 가난한 집의 겨울을 버티게 합니다.

그러니 이 말들은 식물도감 속 용어라기보다, 아궁이와 지게와 낫과 도끼가 만들어낸 생활의 분류표에 가깝습니다.

2017년에 강의 자료로 정리했던 ‘나무의 부분을 일컫는 말들’을 다시 들여다보니, 산직말과 산직골이라는 지명이 조금 다르게 읽힙니다. 그것은 단순히 산을 지키던 사람의 마을 이름이 아니라, 산과 나무와 사람이 서로 기대어 살던 시대의 흔적처럼 보입니다.

산직이 지키던 것은 단순한 산림 자원이 아니었습니다.
그 산에는 마을 사람들의 밥 짓는 연기, 겨울 난방, 소 먹일 깔거리, 밭에 넣을 거름, 집을 고칠 재료가 모두 얽혀 있었습니다. 산직은 누가 어디까지 가져갈 수 있는지, 살아 있는 나무와 죽은 나무의 경계는 어디인지, 산 주인의 권리와 가난한 사람의 생계가 어디서 부딪히는지를 매일같이 마주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산직말이라는 지명은 조금 엄숙하게 읽힙니다.
그곳은 산을 지키던 사람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산에 기대 살던 사람들의 숨구멍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금지와 허용이 만나는 자리.
생계와 소유가 부딪히는 자리.
산림 보호와 마을살이가 서로 눈치를 보며 균형을 잡던 자리.

오늘 우리는 산을 등산로와 경관으로 먼저 봅니다. 하지만 옛사람에게 산은 연료 창고였고, 마을 경제의 배후였고, 때로는 갈등의 현장이었습니다. 산직말, 산직골이라는 이름은 그 기억을 품고 있습니다.

지명은 사라진 제도의 흔적이기도 하지만, 더 깊게는 사라진 생활 감각의 잔상입니다.

산직말을 찾아가면 이제 산만 보지 않으려 합니다.
그 산을 지키던 사람의 눈을 떠올리고, 그 산 아래서 불쏘시개를 주워 오던 손을 떠올리고,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겨울을 넘기던 집들을 떠올려 봅니다.

산직골은 단순한 산속 골짜기가 아닙니다.
산과 사람이 서로를 견디며 살아낸 오래된 생활사의 이름입니다.

 

출처 - 하늘지도

 

 

 

(CHAT-GPT가 글 흐름과 윤문을 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