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을 공부하며 팔도를 거닐다 보면, 유독 성격이 급하고 외향적인 땅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산줄기 깊은 곳에 점잖게 숨어 있지 못하고, 마을 쪽으로 툭 불거져 나와 “나 여기 있소!” 하며 제 존재를 드러내는 땅. 그런 곳에 붙은 이름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난댕이’입니다.
지역에 따라 난딩이골, 난덩이길, 난디, 난뎅이고개 같은 이름으로도 나타납니다. 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지형을 살펴보면 대체로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산자락에서 앞으로 내민 땅, 골짜기 입구나 마을 쪽으로 불룩하게 나온 사면, 다시 말해 ‘나온 덩어리’ 같은 땅입니다.
물론 ‘난댕이’의 어원을 이것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여러 지역의 난댕이 지명을 지형과 함께 놓고 보면, 산의 몸통에서 살짝 떨어져 나온 듯한 사면, 혹은 사람이 기대어 살 수 있을 만큼 낮아진 산자락이라는 공통된 느낌이 잡힙니다.
산이 등줄기처럼 험준하게 버티고 선 곳이 아니라, 산이 마을을 향해 무릎을 조금 낮추고 손바닥을 내민 듯한 자리입니다.
그래서 난댕이는 단순한 산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들판도 아닙니다. 산과 마을 사이에 놓인 중간지대입니다. 볕이 잘 들고, 물 빠짐도 비교적 좋고, 밭을 일구거나 집을 앉히기에도 괜찮은 자리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옛사람들은 이런 땅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산이 내민 쓸 만한 자리를 알아보고, 그곳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여기서 ‘난댕이’는 ‘번덩’이나 ‘뱅디’ 같은 말과도 조금 다릅니다.
번덩, 펀덩, 뱅디 계열의 지명이 넓고 평평하게 펼쳐진 땅의 느낌을 준다면, 난댕이는 조금 더 입체적입니다. 밋밋하게 누운 땅이라기보다, 산의 기운이 한 덩어리로 뭉쳐 앞으로 나온 자리입니다. 그래서 ‘난댕이’에는 평면의 넓이보다, 불룩한 양감이 먼저 느껴집니다.
말하자면 번덩이 펼쳐진 땅이라면, 난댕이는 나선 땅입니다.
공주 계룡면의 사례는 특히 흥미롭습니다. 이곳에는 ‘윗난댕이’와 ‘아랫난댕이’가 함께 나타납니다. 하나의 난댕이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골짜기와 사면을 따라 위와 아래로 대응하는 구조를 보입니다.
지도 위에서 보면 계룡산 방향으로 고도가 높아지고, 마을 쪽으로 내려오면서 산자락이 여럿 갈래로 부드럽게 풀립니다. 그 가운데 사람이 살고, 밭을 일구고, 길을 내기에 알맞은 사면들이 생깁니다. 이때 사람들은 그 땅을 그냥 산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렇다고 들이라고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산에서 나왔으되 마을로 다가온 땅, 그래서 ‘난댕이’라 불렀던 듯합니다.
윗난댕이와 아랫난댕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높낮이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산과 마을, 골짜기와 길, 물길과 생활권이 서로 어떻게 맞물려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지명 질서입니다. 위쪽 난댕이와 아래쪽 난댕이가 따로 불렸다는 것은, 그만큼 그 땅들이 마을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분명히 구별되어 쓰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지명은 참 재미있습니다.
처음 들으면 장난스럽고, 조금은 투박합니다. 하지만 지도를 펼쳐 놓고 지형을 들여다보면, 그 이름이 결코 아무렇게나 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난댕이는 산의 일부이면서도 산만은 아니고, 들의 가장자리이면서도 들만은 아닙니다. 산이 마을 쪽으로 슬쩍 몸을 내민 자리, 사람이 그 몸짓을 알아보고 이름을 붙인 자리입니다.
그래서 나는 ‘난댕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괜히 웃음이 납니다.
땅도 가끔은 잘난 척을 합니다. “나 여기 나와 있소.” “나 좀 쓸 만한 자리요.”
옛사람들은 그 잘난 척하는 땅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땅을 알아보고, 밭을 만들고, 길을 내고, 마을의 한 부분으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덩어리’ 같은 땅은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왔고, 이름을 얻어 지금까지 남았습니다.
난댕이.
짧고 투박한 이름이지만, 그 안에는 산이 마을을 향해 내민 손바닥 하나가 들어 있습니다.
"난댕이는 산이 부리는 기분 좋은 ‘잘난 척’입니다. 험한 산세에 지친 사람들에게 ‘여기라면 발 뻗고 살만하다’며 슬쩍 내밀어 준 사면의 여유이지요. 전국 산자락마다 튀어나온 이 난댕이들이, 공주 계룡면에서처럼 위아래로 짝을 맞춰 나타날 때면 땅과 그 땅을 일구는 사람들의 생각이 보이니 살짝 흐뭇함에 웃음이 나옵니다. "
하늘지도 내용을 편집, 아랫난댕이는 윗 난댕이와 직선으로 1Km가량 떨어져 있고, 고도상으로나 지형상으로 아래쪽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