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터무늬-지명, 땅이름 이야기

[땅이름 산책] 바, 보? 바보 아니고 직선! 바곡, 진바곡지, 바나니골 등

잉화달 2026. 7. 11. 03:09

충북 괴산 청안면 조천리 ‘바나니골’과 바·버·보 계열 지명의 의미망 연구

― 바곡·진바곡지와 목재 생활어의 비교를 중심으로

                                                                                                                복권승

초록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조천리 산 24-4의 ‘바나니골’은 주변의 다른 골짜기와 달리 약 600m에 걸쳐 산 사면을 대각선 방향으로 곧게 가르는 선형 지형을 이룬다. 그러나 현재 확인되는 지역 지명자료에는 이 이름의 유래가 전하지 않는다. 본 연구는 바나니골의 ‘바’를 ‘바깥’이라는 위치어로 해석하기보다, 밧줄의 , 길고 곧은 재목과 통나무를 가리키던 방언형 , 건축 구조재인 대들보의 와 연결되는 선형 사물의 의미망 속에서 해석한다.

비교 대상으로는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미곡리의 공식 지명 ‘바곡’과 경상북도 영천시 오미동의 ‘진바곡지’를 살펴보았다. 세 지명은 모두 주변 지형에 비하여 한 방향으로 길고 비교적 곧게 뻗은 골짜기 축을 보인다. 특히 ‘진바곡’은 ‘긴’을 뜻하는 방언형 ‘진-’이 결합하여 ‘길고 곧은 바 같은 골짜기’라는 내부 구조를 비교적 투명하게 보여 준다.

본 연구는 바·버·보가 역사언어학적으로 동일한 어원에서 갈라졌다고 확정하지 않는다. 다만 세 어형이 전통 생활어에서 길고 곧은 줄, 재목, 통나무, 구조재라는 공통된 형상과 기능을 가리키며, 그 의미장이 골짜기 지명에도 투사되었을 가능성을 제안한다. 아울러 바소거리·바구니와 같은 생활도구의 명칭이 다시 도구 전체의 모양을 닮은 지형에 전이되는 2·3차적 지명 형성 과정도 함께 검토한다.

주제어: 바나니골, 바곡, 진바곡지, 바, 버, 보, 버껍데기, 형상지명, 방언, 지명어원


1. 연구의 출발점

지명은 단순히 위치를 표시하는 기호가 아니다. 사람들이 어떤 지형을 무엇과 닮았다고 보았는지, 당시 어떤 생활도구와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했는지를 함께 보존한다. 특히 지명에는 일반어에서 사라진 옛말이나 지역 방언이 화석처럼 남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명과 방언을 함께 검토하는 것은 국어사 연구에서도 중요하다. (국립국어원)

바나니골 연구는 다음과 같은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괴산 청안면 조천리의 ‘바나니골’은 왜 주변 골짜기와 달리 독보적으로 곧은가?
이 지명의 ‘바’는 ‘바깥’일까, 아니면 밧줄이나 곧은 재목을 뜻하는 형상어일까?

제공된 위성영상을 보면 바나니골은 산지 내부를 대각선으로 가르며 약 600m가량 이어진다. 주변 골짜기들이 굽거나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데 비해, 바나니골은 하나의 긴 재목이나 줄을 비스듬히 놓은 듯 주축이 매우 뚜렷하다.

이러한 지형은 ‘바’를 단순한 방향어나 위치어로 보기보다 길고 곧게 뻗은 사물의 이름으로 해석하게 한다. 이후 진주시 미곡리의 ‘바곡’과 영천시 오미동의 ‘진바곡지’가 비교 사례로 발견되면서, 하나의 지명에 대한 직관은 서로 떨어진 지역의 지명들을 묶는 비교지명학적 가설로 발전하였다.


2. 연구자료와 방법

2.1 핵심 지명자료

본 연구가 중심적으로 비교한 지명은 세 곳이다.

지명소재지지명·지형의 특징

바나니골 충북 괴산군 청안면 조천리 산 24-4 약 600m의 좁고 곧은 대각선형 산골
바곡 경남 진주시 미천면 미곡리 783 길고 비교적 곧은 골짜기·경작지 축
진바곡지 경북 영천시 오미동 16 일대 긴 대각선형 골짜기를 막아 형성된 저수지

미곡리 ‘바곡’은 한국지명사전에 수록된 공식 지명으로, 사용자가 확인한 항목에는 국무원 고시 제16호, 1961년 4월 22일이라는 고시정보가 제시되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명사전은 지명의 주소와 고시번호·고시일자 등을 제공하는 국가 지명정보 체계이다. (Open Archives)

따라서 바곡은 최근 민간 지도 업체가 임의로 등록한 별칭이 아니라, 1961년 이전에 조사·채록되어 공식화된 전래 지명으로 보아야 한다.

2.2 생활어와 방언자료

지명과 비교한 주요 생활어는 다음과 같다.

  • 밧줄을 뜻하는
  • 길고 곧은 통나무·재목을 가리키던 바·버·보
  • 통나무나 재목의 껍질을 뜻하는 버껍데기·버급데기·바겁데기
  • 건축 구조재인 보·들보·대들보
  • 직선적인 살대가 부채처럼 뻗은 바소거리·바소쿠리
  • 바고니·바구리·바구미 등으로 변이한 바구니

‘버껍데기’ 계열은 충청도 여러 지역과 경남 거창 등지에서 사용된 생활어라는 현장 증언을 중심으로 삼았다. 앞선 「바퀴와 바겁데기, 횃대와 보, 바의 어원 연구」에서도 ‘바·박’을 통나무나 사물의 외면 및 구조와 연결하는 가설이 제시된 바 있다.

2.3 판단 기준

각 지명은 다음 네 기준으로 검토하였다.

  1. 음형: ‘바’가 독립된 구성요소로 분리되는가.
  2. 지형: 주변 지형과 비교해 길고 곧은 주축이 뚜렷한가.
  3. 생활어: 같은 지역문화권에 ‘바·버·보’ 계열의 재목·줄 관련 어휘가 존재하는가.
  4. 대안 가설: 바깥, 바위, 성씨, 한자 표기 등 다른 해석이 더 잘 맞는가.

이는 소리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여러 말을 연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휘·사물·지형·비교지명이 함께 일치하는지를 살피기 위한 방법이다.


3. ‘바·버·보’의 생활어적 의미망

3.1 밧줄의 ‘바’: 길고 이어진 선

‘바’는 굵고 긴 줄을 가리키는 말로서 복합어에 흔적을 남긴다. 예를 들어 ‘장바’는 혼자 다루기 알맞게 사려 놓은 긴 밧줄을 뜻하며, ‘바사래’ 역시 바를 사려 놓은 것을 가리킨다. (Wordrow)

‘바’라는 사물이 지닌 핵심 형상은 다음과 같다.

  • 길다.
  • 한 방향으로 이어진다.
  • 당기면 곧아진다.
  • 둥근 단면을 지닌다.
  • 끊어지지 않는 하나의 연속선을 만든다.

그러므로 지명에서 ‘바’가 사용되었다면, 현대적인 자로 잰 완전한 직선보다 주변 지형에 비해 덜 굽고 한 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형상을 가리켰을 가능성이 크다.

3.2 대들보의 ‘보’: 길게 건너지른 재목

국어사 자료에 따르면 오늘날의 ‘보·들보·대들보’ 가운데 가장 오래 확인되는 말은 ‘보’이다. 15세기 문헌에는 종성 ㅎ을 지닌 ‘봏’으로 나타나며, 그 자체가 대들보를 의미하였다. 다만 국어학계에서도 ‘보’의 더 오래된 어원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국립국어원)

건축물에서 보는 보의 형태적 특징은 분명하다.

기둥과 기둥 사이를 길게 건너지르며, 위의 무게를 받아 지탱하는 굵고 긴 재목

문화유산 자료에서도 보는 건물의 중심부에 수평으로 놓여 다른 구조재와 지붕 하중을 받는 부재로 설명된다. (문화재청)

따라서 ‘보’는 기능 면에서는 ‘받치는 것’이지만, 시각적·재료적 측면에서는 길고 굵으며 비교적 곧은 나무이다.

3.3 ‘버’: 재목의 몸통과 껍질

충청도와 일부 영남 지역의 생활어에서 곧은 통나무나 잘라 놓은 재목을 ‘버’ 또는 그와 가까운 음형으로 불렀다는 증언이 있다. 산주가 잘라 둔 재목 자체를 가져갈 수 없었던 주민들이 그 나무에서 벗겨진 껍질을 모아 땔감으로 사용했고, 이를 다음과 같이 불렀다.

  • 버껍데기
  • 버급데기
  • 바겁데기

이 말에서 ‘버’는 단순히 껍질 자체라기보다 껍질을 두르고 있던 통나무나 재목의 몸체를 가리켰을 가능성이 있다.

그 의미를 구조화하면 다음과 같다.

버: 길고 둥근 재목의 몸체
버껍데기: 그 몸체에서 벗겨진 외피

이는 ‘버’가 ‘바깥’이라는 추상적 공간 개념에서 출발했다기보다, 우선 길고 둥근 통체적 물체를 가리킨 말이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3.4 동일 어원인가, 공통 의미장인가

바·버·보가 역사언어학적으로 하나의 어근에서 규칙적으로 갈라졌다는 증거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특히 ‘보’의 어원 자체가 미상으로 남아 있으므로, 곧바로 다음과 같이 단정해서는 안 된다.

바 = 버 = 보

그러나 세 어형이 전통생활에서 공유하는 형상은 분명하다.

어형대표 사물공통된 형상·기능

밧줄, 긴 줄, 살대 길고 연속적이며 당기면 곧아짐
통나무, 재목의 몸체 길고 둥근 통체
들보, 대들보 길게 건너질러 버티는 재목

따라서 현 단계에서는 이들을 확정된 동원어군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목재·선형 사물의 의미장으로 규정하는 것이 안전하다.

바·버·보 의미장
= 길고 곧게 뻗은 줄·통나무·재목·구조재

음운적 친연성은 향후 고어와 방언자료로 검증해야 하지만, 지명 연구에서는 세 말이 공유하는 인지적 형상 자체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4. 생활도구를 거치는 의미의 2·3차 전이

‘바’ 계열 지명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 수 있다. 어떤 이름은 ‘바’의 직선 형상을 지형에 직접 투사한 반면, 다른 이름은 먼저 생활도구의 이름으로 굳어진 뒤 도구 전체의 모습을 다시 지형에 옮긴 것으로 볼 수 있다.

4.1 1차 전이: 바에서 지형으로

가장 직접적인 과정이다.

밧줄·재목의 바
→ 길고 곧은 선형 이미지
→ 바 같은 골짜기·능선·물길

여기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바곡·진바곡·바나니골이다.

4.2 2차 전이: 바에서 생활도구로

‘바소거리’는 국립민속박물관 자료에서 명시적으로 ‘바+소쿠리’로 분석된다. 바작이라고도 하며, 이를 지게에 붙이면 바작지게 또는 바지게가 된다. (민속백과사전)

현장에서 관찰되는 바소거리는 일반 소쿠리처럼 안으로 깊이 오목하게 모이는 그릇이라기보다, 긴 재료가 지게의 바깥쪽으로 곧게 부채살처럼 뻗는 구조를 가진다. 이 경우 ‘바’는 ‘바깥’보다 긴 살대·직선적인 골격을 가리킨 것으로 보는 편이 형태에 잘 맞는다.

4.3 3차 전이: 도구 전체의 형상에서 지형으로

바구니는 16세기 문헌에 ‘바고니’, 18세기에는 ‘바구레’, 19세기에는 ‘바군이’로 나타나며, 지역에 따라 바구리·바구미·바그미·보고니 등 다양한 음형으로 전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바구니의 ‘바’가 밧줄의 ‘바’와 역사적으로 같은 형태소인지는 아직 확정할 수 없다. 그러나 생활문화적 의미 이동은 다음과 같이 가정할 수 있다.

길고 곧은 바·살대
→ 바를 엮어 만든 도구
→ 둥글거나 오목한 완성품의 형상
→ 바구니처럼 둘러싸인 지형

따라서 바구니·바구리·바고지·바구내 계열의 일부 지명은 원초적인 직선성보다 바구니라는 완성된 도구의 둥글고 오목한 형상에서 붙었을 수 있다.

이 경우 의미 형성은 2~3단계를 거친다.

단계의미의 중심

1단계 바: 길고 곧은 재료
2단계 바를 엮어 만든 바소거리·바구니
3단계 바구니 모양을 닮은 골·마을·분지

다만 ‘바고지·바구내·바고리’ 등의 개별 지명이 실제로 바구니형 지형인지는 반드시 지형과 옛 표기를 각각 확인해야 한다.


5. 핵심 지명의 개별 분석

5.1 괴산 조천리 바나니골

바나니골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상대적 직선성이다.

  • 산지 내부에 자리한다.
  • 주변 골짜기보다 굴곡이 적다.
  • 하나의 주축이 대각선 방향으로 길게 이어진다.
  • 그 형상이 밧줄이나 곧은 통나무를 비스듬히 놓은 모습과 닮았다.

이 지형에서는 ‘바깥쪽 골’이라는 위치 설명보다 바처럼 난 골이라는 형태 설명이 훨씬 직접적이다.

바나니골 전체를 잠정적으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바와 같은 형상으로 곧게 난 골

다만 ‘-나니-’의 정확한 형태론적 분석은 아직 미해결이다. 구어적 표현인 ‘바처럼 난 이’, ‘바가 난 듯한 곳’ 등이 굳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지만, 바난이골→바나니골과 같은 음운 경로는 옛 표기나 주민 발음이 확인되기 전까지 복원 가설로만 두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 가장 안정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다.

바나니골의 첫 요소 ‘바’는 길고 곧은 줄이나 재목의 형상을 가리킬 가능성이 높으며, 나머지 요소의 정확한 문법적 구성은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5.2 영천 오미동 진바곡지

진바곡지는 바나니골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대각선형 골짜기 축을 보인다. 이름은 다음처럼 분절할 수 있다.

진 + 바 + 곡 + 지

  • 진: 긴
  • 바: 밧줄·재목처럼 길고 곧은 것
  • 곡: 골짜기
  • 지: 못·저수지

전국 지명자료에는 ‘긴골→진골’, ‘긴밭골→진밭골’의 변화가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원주시 지명자료는 골짜기가 길어 ‘긴골>진골’로 변했다고 명시하며, 합천군 자료도 긴 밭이 있는 곳을 ‘진밭골’이라 설명한다. (합천군청)

따라서 진바곡은 다음처럼 해석할 수 있다.

긴 바 같은 골짜기

여기서 ‘진’과 ‘바’는 단순 중복이 아니다.

  • ‘진’은 길이와 규모
  • ‘바’는 길고 곧은 특정 사물의 형상
  • ‘곡’은 지형의 종류

를 담당한다.

즉 단순히 긴 골이라면 ‘진골’이면 충분하다. 굳이 ‘바’를 덧붙였다는 것은, 이 골이 길 뿐 아니라 밧줄이나 재목처럼 한 줄로 뻗은 모습이 특별히 인식되었음을 암시한다.

‘진바곡지’는 본래의 골짜기 이름 ‘진바곡’에 저수지가 조성된 뒤 ‘지’가 덧붙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를 확정하려면 저수지 조성 이전 지도나 주민 구술이 필요하다.

5.3 진주 미곡리 바곡

바곡은 세 사례 가운데 형태가 가장 간결하다.

바 + 곡

미곡리는 낮은 산지 사이로 경작지와 취락이 길게 이어진다. 바나니골처럼 좁고 깊은 산골은 아니지만, 골짜기의 전체 축이 한 방향으로 길고 비교적 곧게 형성되어 있다.

바곡의 중요성은 세 가지이다.

첫째, 1961년에 공식 고시된 전래 지명이다.
둘째, ‘진-’이나 ‘-나니-’ 같은 부가 요소가 없는 가장 단순한 형태이다.
셋째, 같은 미곡리 지명자료에 ‘가매바구’가 등장하며 이를 명확히 ‘바위’라고 풀이한다.

미곡리 주민언어에서 바위를 ‘바구’라고 했다면 다음 두 음형이 지역 안에서 구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 바구: 바위
  • 바곡: 바+골짜기

따라서 바곡을 단순히 ‘바구골·바위골’이 줄어든 이름으로 볼 필요는 낮아진다. 오히려 ‘바+곡’ 자체가 원형에 가까운 구조일 가능성이 커진다.

미곡리의 상세 지명유래 자료에서 바곡이 빠진 것은 이 이름이 가짜이거나 최근에 생겼기 때문이라기보다, 국가 지명조사와 지역 지명집의 조사 시기·범위·제보자가 서로 달랐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6. 세 지명의 비교

항목바나니골진바곡지바곡

지형 좁고 선명한 직선 산골 긴 대각선형 골과 저수지 넓어진 선형 골짜기와 경작지
‘바’의 투명성 중간 높음 매우 높음
부가 요소 -나니-의 분석이 필요 진[긴]·곡·지가 투명 곡만 결합
지명의 공식성 지명사전 표기 지도·저수지명 1961년 공식 고시
연구상 가치 지형 일치가 가장 강함 의미 구조와 지형이 함께 강함 가장 간결한 기본형

세 사례는 각각 다른 약점을 보완한다.

  • 바나니골은 지형이 매우 선명하지만 내부 형태가 불투명하다.
  • 진바곡지는 구조가 비교적 투명하고 지형도 선명하다.
  • 바곡은 지형의 직선성이 상대적으로 완만하지만 ‘바+곡’이라는 기본형을 보존한다.

따라서 다음의 계열이 성립한다.

바곡: 바 같은 골
진바곡: 길고 곧은 바 같은 골
바나니골: 바처럼 길고 곧게 난 골

서로 멀리 떨어진 충북·경북·경남에서 ‘바’와 선형 골짜기의 결합이 반복된다는 사실은, 이를 한 지역의 우연한 민간어원으로만 보기 어렵게 한다.


7. 대안 해석의 검토

7.1 ‘바깥’의 바

‘바’를 바깥 또는 외곽으로 해석할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지명에는 안·밖, 안골·밭골처럼 중심 취락과의 상대적 위치를 나타내는 이름이 많다.

그러나 세 핵심 사례에서는 다음 이유로 우선순위가 낮다.

  1. 세 곳 모두 외곽성보다 선형성이 훨씬 눈에 띈다.
  2. 진바곡의 ‘진[긴]’이 형태적 길이를 직접 강조한다.
  3. 바소거리와 밧줄, 재목 생활어가 ‘바’의 직선성을 뒷받침한다.
  4. ‘바깥의 골’이라면 안쪽에 대응되는 지명이나 중심 취락과의 관계가 확인되어야 한다.

따라서 ‘바깥’은 일부 바거리·바고리 계열에서 검토할 수 있는 별도 가설이지만, 바나니골·바곡·진바곡의 주된 설명으로는 약하다.

7.2 ‘바위·바구’ 계열

남부 방언에서 바구·바우가 바위를 뜻하므로 ‘바곡’ 역시 바위골의 축약일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미곡리에서는 ‘가매바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같은 지역에서 바위를 바구라고 분명히 발음하면서 별도의 장소를 바곡이라고 불렀다면, 두 이름을 무조건 같은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바구계 지명은 다음과 같이 별도로 분류하는 편이 안전하다.

  • 바구·바우가 직접 확인되는 지명: 바위 계열 우선
  • 바+곡이며 선형 지형인 지명: 줄·재목 계열 검토
  • 바구니·바고니형과 둥근 지형이 대응하는 지명: 생활도구 형상 계열 검토

7.3 ‘길다’만을 뜻하는 말

‘바’ 자체가 단순히 ‘길다’라는 형용사적 의미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진바곡에는 이미 ‘긴’을 뜻하는 ‘진-’이 있다.

진[긴] + 바 + 곡

따라서 ‘바’는 길이라는 추상적 성질만 표시하기보다, 길고 곧은 구체적인 사물을 가리켰을 가능성이 더 높다. ‘진’은 길이를 강조하고, ‘바’는 그 형상을 구체화한다.

7.4 우연한 음상 일치

세 지명의 유사성만으로 어원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음 자료들이 동시에 모인다는 점은 중요하다.

  • 서로 떨어진 세 지역의 공식 지명
  • 반복되는 선형 골짜기 지형
  • 밧줄의 바
  • 통나무·재목의 버
  • 대들보의 보
  • 바소거리의 직선 살대 구조
  • 버껍데기 계열의 광범위한 방언 사용

지명 해석에서는 이름의 소리뿐 아니라 부류칭, 주변 지명, 실제 지형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연구 원칙이 제시되어 왔다. (KCI) 이 기준을 적용할 때 ‘바=길고 곧은 줄·재목’ 가설은 단순한 음상 연상보다 높은 설명력을 가진다.


8. 바 계열 지명의 의미 형성 모형

지금까지의 논의를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원초적 형상

길고 곧게 뻗은 선 또는 통체

생활어의 분화

바 ― 밧줄·긴 줄·살대
버 ― 통나무·재목의 몸체와 껍질
보 ― 길게 건너지른 구조재

지명으로의 직접 전이

바 같은 골
→ 바곡
→ 진바곡
→ 바나니골

생활도구를 거친 간접 전이

바·살대를 엮음
→ 바소거리·바구니
→ 도구 전체의 둥글고 오목한 모양
→ 바구니형 골짜기·마을·분지의 이름

이를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바의 선형성 → 줄과 재목 → 골짜기의 직선성
바의 재료성 → 바구니·소쿠리 → 용기형 지형의 오목함

따라서 바 계열 지명에는 최소 두 개의 층위가 존재할 수 있다.

  1. 직접 형상지명: 바곡·진바곡·바나니골
  2. 도구 매개 형상지명: 바구니·바구리·바고지·바구내 계열의 일부

9. 결론

본 연구의 잠정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괴산 조천리의 바나니골은 약 600m 동안 대각선 방향으로 곧게 이어지는 지형 때문에, ‘바깥의 골’보다 바나 재목처럼 곧게 난 골로 해석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둘째, 진주 미곡리의 바곡은 1961년 공식 고시된 전래 지명이며, ‘바+곡’이라는 가장 단순한 구조를 보존한다. 같은 지역의 ‘바구’가 바위를 뜻한다는 사실은 바곡의 ‘바’를 바위 계열과 구별할 근거가 된다.

셋째, 영천 오미동의 진바곡지는 ‘진[긴]+바+곡+지’로 분석할 수 있다. ‘진’이 길이를, ‘바’가 밧줄이나 재목 같은 구체적인 선형 형상을 나타낸다면, 이름과 지형이 매우 긴밀하게 대응한다.

넷째, 밧줄의 바, 통나무·재목의 버, 대들보의 보는 동일 어원이라고 확정할 수 없지만, 전통생활 속에서 길고 곧은 선형 사물이라는 공통 의미장을 형성한다. 이 의미장이 골짜기의 형태를 표현하는 지명어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섯째, 바소거리와 바구니 계열은 ‘바’가 먼저 생활도구 이름에 정착하고, 이후 완성된 도구의 형태가 다시 지형에 투사된 2·3차적 지명 형성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다만 바구니의 정확한 형태소 분석과 개별 바구니계 지명의 유래는 별도의 조사가 필요하다.

따라서 현재 단계에서 가장 균형 잡힌 결론은 다음과 같다.

‘바’는 일부 지명에서 바깥이라는 위치어가 아니라, 밧줄·살대·통나무·재목처럼 길고 곧게 뻗은 사물을 가리키던 형상어였을 가능성이 있다. 바나니골·바곡·진바곡은 이러한 ‘바’의 선형성을 골짜기 지형에 투사한 비교지명군으로 볼 수 있으며, 버껍데기의 ‘버’와 대들보의 ‘보’는 그 주변에 존재한 목재·재목 의미장의 흔적일 수 있다. 다만 바·버·보의 역사적 동원관계와 바나니골의 세부 형태론은 향후 문헌·방언 조사를 통해 검증해야 한다.

향후 조사과제

  • 바나니골의 주민 발음과 구술 유래 채록
  • 조천리·미곡리·오미동의 옛 지적원도와 임야도 확인
  • 저수지 조성 이전 ‘진바곡’ 독립 지명 확인
  • 충청·경남 지역의 버껍데기·버급데기 사용지역 지도화
  • 전국의 바곡·진바곡·바골·바나니 계열 지명 전수조사
  • 골짜기의 곡률과 직선성을 수치화한 지형 비교

‘바곡–진바곡–바나니골’의 삼각 비교‘바–버–보’의 목재 생활어 의미망 연구의 중요한 축이 되는 지도 상 지형 =>

아래 골짜기 입구에서 부터 대각선으로 600M가 직선으로 이어지는 골짜기가 바나니골이다. (지도출처:하늘지도)
위 바나니골과 닮았다. 역시 길게 자를 대고 그은 것 처럼 골짜기가 직선이다. (지도출처:하늘지도)

 

입구부터 서쪽(왼쪽)으로 산꼭대기까지 한줄기로 길게 이어진 골짜기로 진바리골이 있다.  전국의 진바골과 진바리골 지명의 사례는 광범위하게 많이 분포한다.  - 그리고 그 바 계열은 하나같이 길게 이어진 하나의 보(바,발,버)의 형태이다.    문에 치렁치렁 거는 '발'의 경우와 우리 인체에 다리를 통헤 길게 이어진 '발' 또한 바리와 바와 의미적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