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터무늬-지명, 땅이름 이야기

[생김 산책] 발바닥의 발에서-바래기산, 바라기골까지.

잉화달 2026. 7. 17. 09:38

바래기산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바라보다’와 ‘바랭이’, ‘벼랑·바랑’ 사이에서 살펴본
바래기 계열 지명에 관한 소고

 

전망 좋은 고개였을까, 바랭이가 골을 뒤덮었던 자리였을까. 아직 정답을 닫지 않고 전국의 사례와 현장 지형을 함께 살펴본다.

 

복권승

 

2026년 7월

 

 

1. 들어가며

전국의 지명을 검색하다 보면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비슷한 이름들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바래기’도 그중 하나다.

이천과 용인에는 바래기산이 있고, 보령에는 바래기고개가 있다. 곡성·옥천·남원·남해에는 산바래기골이 있으며, 곡성·임실에는 삼바래기골이 나타난다. 진안에는 왕바라기골과 당바래기골이 있고, 장수에는 큰개바래기골과 작은개바래기골이 한 쌍으로 남아 있다.

처음에는 ‘바라보다’에서 비롯된 조망지명으로 생각하기 쉽다. 산이나 들을 바라보는 곳, 앞이 트인 고개, 마을에서 마주 보이는 산이라는 해석이다.

그런데 ‘바래기’라는 소리를 다시 들여다보면 풀이름인 ‘바랭이’가 떠오른다. 바랭이와 왕바랭이는 길가와 밭둑, 묵정밭처럼 사람이 지속해서 건드린 땅에서 왕성하게 자라 경관을 이루는 대표적인 풀이다. 따라서 바래기산과 바래기골은 전망 좋은 장소가 아니라, 한때 바랭이류가 무성하던 생태경관을 가리켰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여기에 발래기·발래골·바랑이 등의 유사 지명과 벼랑·벼리·벼루 같은 말까지 가까이 놓인다. 과연 이 이름들은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진 것일까. 아니면 서로 다른 말들이 비슷한 소리와 지형 이미지 속에서 겹쳐진 것일까.

필자는 현재까지 확인한 사례를 바탕으로 몇 가지 가능성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다만 현장 지형과 주민 구술, 옛 지명 표기를 충분히 확인하지 못한 곳이 많으므로 어느 하나를 확정적인 어원으로 제시하기보다 경쟁하는 해석의 갈래를 함께 열어둔다.

2. 현재까지 확인한 지명

2.1 바래기산과 바래기고개

지명 소재지 유형·비고
큰바래기산 경기 이천시 설성면 대죽리 산 234
바래기산 경기 용인시 처인구 호동 산 197-1
바래기고개 충남 보령시 명천동 산 73-1 ↔ 성주면 성주리 251-8 하나의 고개를 양쪽에서 동일하게 부르는 공유지명

‘큰바래기산’은 본래 바래기산 가운데 큰 산을 구분한 이름으로 보인다. 가까운 곳에 작은바래기산이나 바래기골 같은 짝지명이 있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2 산바래기·삼바래기 계열

지명 소재지
산바래기골 전남 곡성군 곡성읍 신월리 산 11
삼바래기골 전남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282
삼바래기골 전북 임실군 성수면 태평리 산 112
산바래기골 충북 옥천군 옥천읍 동안리 75-1
산바래기골 전북 남원시 아영면 구상리 675-31
산바래기골 경남 남해군 미조면 송정리 산 113
산바라기골 충남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 산 80-5
삼바라기골 전남 보성군 문덕면 양동리 1405

이 유형에서는 ‘산바라기–산바래기–삼바라기–삼바래기’라는 연쇄가 보인다. ‘산’의 받침 ㄴ이 뒤의 ㅂ 앞에서 ㅁ으로 발음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비음동화이므로, 삼바래기의 ‘삼’을 숫자 삼(三)이나 삼나무로 풀이하기에 앞서 산바래기의 변이인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산바라기 → 산바래기 / 산바라기 → 삼바라기 → 삼바래기

다만 음운형이 서로 이어진다고 해서 의미까지 곧바로 ‘산을 바라보는 곳’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산비탈에 난 바랭이, 또는 ‘산바랭이’라는 지역 식물 인식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도 남는다.

2.3 선행 요소가 결합한 지명

지명 소재지 우선 검토할 단서
작은개바래기골 전북 장수군 번암면 사암리 산 174-2 개바래기의 작은 골
큰개바래기골 전북 장수군 번암면 사암리 산 160 개바래기의 큰 골
방바래기골 경기 여주시 대신면 가산리 143-4 방·방죽·방위·마을 이름
당바래기골 전북 진안군 성수면 구산리 519 당·당산·당집
왕바라기골 전북 진안군 동향면 학선리 산 87 왕바랭이 또는 큰 바라기
갈바라기골 경남 거창군 가북면 중촌리 갈대·갈림·갈골 등

‘왕바라기골’은 ‘왕-’이 크고 대표적임을 나타낼 수도 있지만, 실제 풀이름인 왕바랭이와 직접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장수의 큰개바래기골과 작은개바래기골은 짝지명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두 골의 공통 이름은 개바래기이고 크기에 따라 큰골과 작은골로 나뉜 것으로 보인다.

3. 보령 바래기고개: 하나의 고개, 양쪽의 같은 이름

자료상 보령시 명천동 산 73-1과 성주면 성주리 251-8에서 각각 ‘바래기고개’가 확인되지만, 이는 서로 다른 두 고개가 아니다. 명천동과 성주리가 산줄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며, 하나의 고개를 양쪽에서 동일하게 부르는 사례다.

전통적인 고개 이름은 어느 마을에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쪽 마을에서는 고개 너머 목적지의 이름을 붙이고, 반대편에서는 다시 이쪽 마을의 이름을 붙인다. 하나의 고개가 방향에 따라 두 이름을 갖는 셈이다.

그런데 보령의 바래기고개는 성주 쪽에서도, 명천동 쪽에서도 같은 이름을 쓴다. 이는 ‘바래기’가 고개 너머 어느 특정 마을이나 목적지를 가리키기보다, 양쪽 주민이 함께 인식한 고개 자체의 특징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고갯마루가 양쪽으로 시야가 트여 멀리 바라보기 좋은 곳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바랭이와 왕바랭이가 무성했거나, 벼랑과 비탈이 두드러진 곳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양쪽에서 동일한 명칭이 전승되었다는 점은 특정 방향을 바라본다는 해석보다 식생·형상·토지이용처럼 고개 전체에서 공유되는 특성에 조금 더 무게를 싣는다.

보령의 두 주소는 지명 분포를 셀 때 한 건으로 처리하되, 하나의 이름이 고개의 양쪽에 걸쳐 전승된 중요한 공유지명 사례로 따로 표시해야 한다.

4. 번째 가설: 무엇을 바라보는 장소

‘바라기’는 무엇을 향하거나 바라보는 존재와 장소를 나타내는 말이다. 같은 구성으로 보면 산바라기는 산을 바라보거나 산 쪽으로 열린 곳으로 풀이할 수 있다. 산과 골짜기가 서로 마주 보는 지형, 고개에 올라서면 맞은편 산이나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이런 이름이 붙었을 수 있다.

바래기산도 산 위에서 멀리 바라보는 산과 마을에서 늘 바라보이는 앞산이라는 두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통 지명에서는 바라보는 주체와 바라보이는 대상이 문법적으로 엄격히 구분되지 않는다.

다만 보령 사례처럼 고개 양쪽이 동일한 이름을 공유한다면 어느 한쪽 목적지를 바라보는 데서 생긴 이름이라는 설명은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조망설을 적용하려면 특정 목적지보다 고갯마루 자체가 양쪽 모두에 공통된 전망대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5. 번째 가설: 바랭이와 왕바랭이의 생태지명

바랭이는 단지 어디에나 조금씩 섞여 자라는 이름 없는 풀이 아니다. 여름철 밭과 길가, 밭둑, 마당 가장자리와 묵정밭을 빠르게 차지하여 우점하는 대표적인 풀이다. 왕바랭이 또한 뿌리 가까이에서 여러 줄기가 퍼지며 단단하게 자리를 잡아 장소의 경관을 만들 수 있다.

지명은 희귀한 동식물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에서 반복해서 마주하고 한 장소를 넓게 덮는 우점식물이 더 쉽게 이름이 된다. 갈대가 많은 곳이 갈밭·갈골이 되고, 싸리나무가 많은 곳이 싸리골이 되듯 바랭이가 무성한 곳이 바랭이골·바래기골이 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바래기’가 ‘바랭이’의 지역 발음이었는지는 방언자료와 주민 구술로 확인해야 한다. 주민들이 바랭이를 실제로 바래기 또는 비슷한 이름으로 불렀다면 생태유래설은 훨씬 강해진다.

왕바라기골은 큰 바라기골일 수도 있지만 왕바랭이가 우점하던 골일 수 있다. 산바래기골은 산을 바라보는 골뿐 아니라 산에 난 바랭이가 많은 골일 수 있다. 고갯마루 역시 통행·벌목·방목으로 숲이 열리고 흙이 드러나는 교란지였으므로 바랭이류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었다.

6. 바라보기와 바랭이가 장소에서 겹칠 가능성

두 가설은 실제 경관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앞이 트여 바라보기 좋은 곳은 햇볕도 잘 든다. 고갯마루와 산비탈의 열린 터, 밭 주변과 옛길은 사람이 지속해서 드나들며 숲을 걷어낸 곳이다. 이런 장소에는 바랭이와 왕바랭이가 우점하기 쉽다.

앞이 트여 바라보기 좋은 곳 → 햇볕이 잘 드는 열린 곳 → 사람과 가축의 이동으로 교란된 곳 → 바랭이류가 우점하기 좋은 곳

어떤 바래기 지명은 바라보다와 바랭이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애초에는 식물에서 생겼으나 후대 주민들이 조망지명으로 이해했을 수도 있고, 반대로 바라보기 좋은 장소에 바랭이가 많아 두 의미가 자연스럽게 포개졌을 수도 있다.

7. 경계에 놓인 손바래기와 발래기 계열

7.1 손바래기골과 손바래기방축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남리 일대에서는 ‘손바래기골’과 ‘손바래기방축’이 함께 확인된다. 두 이름이 같은 장소권에서 나란히 나타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방축이 별도로 이름을 얻었다기보다 기존의 골짜기 또는 소지명인 손바래기의 이름을 따라 붙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 이름은 곧바로 ‘손+바래기’로 나누기 어렵다. ‘손’이 사람의 신체인 손이나 손바닥을 가리키는지, 작거나 좁은 지형을 나타내는 지역어인지, 인명·마을 이름 또는 다른 말이 변한 것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손바래기’ 전체가 하나의 오래된 고유지명일 가능성도 있다.

항공사진에서 손바래기방축은 산지 안쪽의 작은 골과 경작지에 놓여 있다. 농경과 개간, 묵정밭 같은 교란지에서 바랭이류가 왕성하게 자랐을 가능성은 열어둘 수 있지만, 현재 자료만으로 생태유래를 입증할 수는 없다. 따라서 손바래기골과 손바래기방축은 바래기 계열의 확정 근거로 사용하기보다 앞으로 지형·구술·옛 표기를 확인해야 할 경계 사례로 두는 것이 적절하다.

손바래기는 본류에 성급히 합치지 않되 버리지도 않는다. ‘손’의 의미와 방축 이전의 옛 골 이름이 확인될 때까지 바래기 계열의 옆 가지에 걸어둔다.

7.2 발래기·발래골 계열

지명 소재지
발래납골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112
발래기골 충북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 산 34-1
발래기교 충북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 568-1
발래골 경기 가평군 청평면 고성리 434
발래골 경북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1536-2
발래동(배래) 강원 평창군 대화면 대화리
발래 경북 상주시 중동면 죽암리

발래기는 바래기와 소리가 가깝지만 ㄹ이 더 들어 있다. 이를 모두 바래기의 변이로 보는 것은 아직 이르다. 바래기에서 ㄹ이 첨가된 지역형, 빨래·빨래터와 관련된 물가 지명, 발·벌·밝- 계열의 지형어, 배래와 연결되는 발음, 별도의 식물명이나 지역어를 나누어 살펴야 한다.

진천에서는 발래기골과 발래기교가 함께 확인된다. 다리 이름은 골짜기와 물길 이름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크므로 실제 물길과 빨래터 흔적을 확인하기 좋다. 제주의 발래납골은 제주어의 식물명과 지형어를 따로 검토해야 한다.

8. 바랑이와 벼랑: 등에 땅과 바깥 가장자리

지명 소재지
바랑이 충남 공주시 이인면 발양리 272-12
큰바랑이골 경남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성바랑이 대전광역시 동구 판암동

‘바랑’은 승려가 등에 지고 다니던 자루 또는 배낭을 가리킨다. 물건을 넣으면 가운데가 불룩해지고, 어깨에 걸면 아래로 늘어지며, 입구는 좁고 몸통은 넓어진다. 이러한 형상은 입구가 좁고 안쪽이 넓게 벌어진 골짜기, 산의 등에 주머니처럼 붙은 골, 능선 바깥으로 둥글게 부풀어 나온 지형과 닮을 수 있다.

바랑이·큰바랑이골 같은 지명은 먼저 골짜기와 산사면의 형상을 바랑에 빗댄 이름인지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큰바랑이골’은 ‘큰+바랑이+골’의 구조라면 바랑처럼 생긴 골짜기 가운데 큰 골을 가리켰을 수 있다. 주변에 작은바랑이골이나 바랑이골 같은 짝지명이 남아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바랑은 눈에 보이는 형상만이 아니라 길 위의 생활도구였다. 승려와 행상, 떠돌이 장인과 길손은 필요한 물건을 바랑이나 등짐에 넣어 산길과 고개를 넘었다. 따라서 바랑이골이나 바랑이고개는 골이 배낭처럼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바랑을 지고 넘어 다니던 길, 잠시 바랑을 내려놓고 쉬던 고개, 절이나 장터·나루로 이어지는 통행로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일 가능성도 있다.

이 생활·이동유래설을 확인하려면 지형의 모양만 볼 것이 아니라 옛길의 방향을 복원해야 한다. 가까이에 절과 암자, 장터, 주막, 나루, 고갯마루의 쉼터가 있었는지, 승려나 행상이 오가던 길이라는 주민 구술이 남아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후대에 만들어진 ‘스님이 바랑을 메고 지나갔다’는 단순 전설은 경계하되, 실제 생활로와 이동망이 확인된다면 바랑의 기능에서 생긴 지명이라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공주시 이인면 발양리의 ‘바랑이’도 주목할 만하다. 구전지명 바랑이와 행정지명 발양리가 음상적으로 가까우므로, 본래 바랑이를 한자로 옮기면서 발양이 되었는지, 반대로 발양이라는 한자지명이 구어에서 바랑이로 변했는지는 옛 문헌의 표기 순서를 확인해야 한다. 대전의 성바랑이 역시 성·산성·성황당 등 선행 요소와 실제 지형을 함께 살펴야 한다.

다만 바랑이 계열을 바래기·바라기와 곧바로 같은 어원으로 묶기는 어렵다. 현재로서는 바랑처럼 불룩하거나 주머니처럼 들어간 지형이라는 도구형상설, 바랑을 지고 넘던 길이라는 생활·이동유래설, 바래기·바라기 계열 지명이 지역 발음 속에서 바랑이로 변한 경우를 함께 열어둘 수 있다.

여기에 벼랑을 놓으면 공간 이미지가 조금 더 넓어진다. 바랑은 산의 등에 붙거나 바깥으로 불룩한 주머니이고, 벼랑은 산과 땅의 바깥쪽이 급하게 끊어진 가장자리이며, 바래기는 앞이 트여 바라보거나 바랭이가 우점한 열린 땅일 수 있다. 세 말이 동일 어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산의 바깥 면, 돌출부, 가장자리와 열린 골짜기라는 공간 이미지 안에서 만날 여지는 있다.

바랑: 등에 지거나 바깥으로 불룩한 주머니 / 벼랑: 급하게 끊어진 바깥 가장자리 / 바래기: 조망이 열리거나 바랭이가 우점한 땅

바랑–벼랑–바래기–발래기–벼리–벼루는 소리와 공간 이미지가 가깝지만, 현재로서는 동일 어원보다 음상·의미망으로 제시하는 편이 안전하다. 벼슬까지의 연결은 높이 솟고 위에 자리한다는 이미지적 연상 이상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9. 해석 가설의 비교

가설 핵심 의미 잘 설명되는 사례 확인 자료
조망·방향설 바라보다, 무엇을 향하다 바래기산·바래기고개·당바래기골 조망 방향·맞은편 지형·옛길
식생유래설 바랭이·왕바랭이 우점지 왕바라기골·산바래기골·개바래기골 지역 식물명·과거 경작지·식생
벼랑·지형설 급경사·가장자리·돌출부 바래기고개·바랑이·성바랑이 경사도·절벽·암벽·옛 표기
도구형상설 바랑·배낭처럼 등에 붙거나 불룩한 지형 바랑이·큰바랑이골 골짜기 형상·짝지명·주민 구술
생활·이동설 바랑과 등짐을 지고 넘던 길 바랑이·큰바랑이골·성바랑이 옛길·절·장터·나루·주막·구술

현재로서는 어느 한 가설이 전체 사례를 독점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산바라기–산바래기–삼바라기–삼바래기의 음운적 연관성은 비교적 뚜렷하지만, 그 바래기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개별 현장에서 달라질 수 있다.

10. 현장조사를 위한 판별 항목

지형

·         앞이 트여 있는가

·         특정 산이나 마을을 정면으로 바라보는가

·         고개 정상에서 시야가 갑자기 열리는가

·         급경사·절벽·돌출 능선 또는 바랑 같은 골짜기 형상이 있는가

생태와 토지이용

·         옛 밭·묵정밭·화전·목초지였는가

·         통행과 방목으로 교란된 열린 땅이었는가

·         바랭이·왕바랭이가 우점하기 좋은 양지인가

·         개바랭이·산바랭이 같은 지역 식물명이 있었는가

옛길과 이동생활

·         바랑이골이 고개나 옛 산길로 이어지는가

·         가까이에 절·암자·장터·주막·나루가 있었는가

·         승려·행상·등짐꾼이 오가거나 쉬어가던 길이라는 구술이 있는가

·         바랑을 닮았다는 설명과 바랑을 지고 넘었다는 설명 중 어느 것이 먼저 전승되었는가

언어와 구술

·         주민의 실제 발음은 바래기·바라기·바랭이 중 무엇인가

·         삼바래기를 산바래기라고도 부르는가

·         양쪽 마을이 같은 이름을 쓰는가, 방향별로 다른 이름을 쓰는가

·         손바래기의 ‘손’을 독립된 말로 인식하는가

·         옛 한자표기와 후대 전설이 남아 있는가

11. 맺음말

바래기라는 이름을 따라가다 보니 산과 고개, 골짜기와 풀이 한꺼번에 만난다. 누군가는 고갯마루에서 맞은편 산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 고개는 앞이 트이고 햇볕이 잘 들었을 것이다. 사람과 가축이 오가며 드러난 땅에는 바랭이와 왕바랭이가 왕성하게 자랐을 것이다. 골짜기 가장자리는 벼랑처럼 가팔랐고, 골의 생김새는 등에 진 바랑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바래기는 단지 바라보다에서 나온 말도, 바랭이라는 풀이름에서만 나온 말도 아닐 수 있다. 서로 다른 기원의 이름들이 비슷한 소리 속에서 합쳐졌거나, 하나의 장소에서 조망과 식생, 지형의 특징이 겹치며 여러 의미를 함께 품었을 가능성이 있다.

바래기·바라기 계열 지명은 조망·방향 지명일 가능성과 바랭이·왕바랭이류가 우점하던 장소에서 비롯된 생태지명 가능성을 함께 지닌다. 일부는 벼랑·바랑·발래기 계열 지형어 또는 생활어와 관계될 수도 있다. 지형, 옛 토지이용, 식생, 방언과 주민 구술을 함께 살펴야 한다.

특히 보령의 바래기고개는 두 주소가 가리키는 두 고개가 아니라, 성주와 명천동이 하나의 고개를 양쪽에서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공유지명이다. 이 사례는 특정 목적지의 이름보다 고개 자체의 공통된 식생·형상·기능에서 이름이 생겼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바랑이 계열 역시 골짜기의 모양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바랑은 승려와 행상, 길손이 등에 지고 다니던 생활도구였으므로 바랑을 지고 넘던 길과 고개의 기억이 지명으로 남았을 가능성도 있다. 지형과 함께 절·장터·나루로 이어지는 옛 이동망을 살펴야 한다.

정읍의 손바래기골과 손바래기방축은 본류에 바로 합치기 어려운 경계 사례다. 그러나 같은 장소권에서 골과 방축이 이름을 공유한다는 점은 손바래기가 방축보다 앞선 생활지명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손’의 의미와 옛 지형이 확인된다면 바래기 계열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갈래가 될 수 있다.

아무튼 하루에 한 가지씩만 찾아보겠다고 시작한 검색이 또 제법 큰 지명군을 만났다. 아직 더 많은 바래기와 발래기, 바랑이가 숨어 있을 것이다. 산을 바라보던 골이었는지, 바랭이가 골을 덮었던 곳인지, 등에 진 배낭처럼 불룩한 바랑이었는지, 벼랑 끝의 땅이었는지. 정답을 서둘러 닫지 않고 다음 지명이 말을 걸어올 때까지 열어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