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터무늬-지명, 땅이름 이야기

[생김 산책] 볼록한 네모와 오목한 네모 쪽두리에서 두디를 지나 두리봉으로

잉화달 2026. 7. 23. 22:42

볼록한 네모와 오목한 네모

― 쪽두리에서 두디를 지나 두리봉으로

우리 몸에서 가장 높은 머리 위에 또 하나의 작은 산을 얹었다. 쪽두리다.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찐 쪽은 혹처럼 불쑥 솟은 둥근 봉우리다. 그러나 그 위에 얹는 쪽두리는 단순히 둥글지 않다. 좁은 밑자리에서 몸체가 벌어지고, 평평한 면과 모진 둘레를 이루며, 머리 위에 하나의 작은 괴체로 올라선다.

쪽이 둥글게 솟은 볼록이라면, 쪽두리는 그 둘레를 모지고 각지게 감싼 ‘네모볼록’이다.

전통 족두리는 겉을 검은 비단으로 싸고 속에 솜을 넣어 만들었다. 위가 넓고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며 여섯 모가 난다. 가운데는 비어 있어 머리 위에 얹을 수 있다. 둥근 모자라기보다 밑은 좁고 위는 벌어진, 작고 모진 산봉우리에 가깝다. 그래서 북한산의 바위봉우리를 비롯한 여러 산과 바위에 족두리봉·족두리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족두리’

물론 족두리라는 말의 역사적 어원은 별도로 살펴야 한다. 고려 후기 원나라에서 들어온 관모의 이름과 관련되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므로, 족두리를 곧바로 ‘쪽+두리’로 분해해 우리말 어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이 글에서 주목하려는 것은 족두리라는 말의 최초 어원만이 아니다. 우리 생활 속에서 족두리가 ‘쪽두리’로 발음되고 이해되며, 머리에 찐 쪽 위에 얹는 모지고 볼록한 쓰개로 자리 잡은 과정도 중요하다.

역사적 어원과 생활 속 의미의 재구성은 서로 다른 문제다. 말이 어디에서 왔는가와 사람들이 그 말을 어떤 사물과 형상으로 받아들였는가는 반드시 같지 않다.

필자가 쪽두리에서 발견한 것은 우리 몸 위에 얹은 작은 산이다. 그리고 그 작은 산의 형상은 집 안의 살림살이와 마을 밖의 지형에서도 반복된다.

1. 쪽에서 쪽두리로

쪽은 머리카락을 한곳에 모아 맺은 것이다. 둥글고 불쑥하다. 피부에 생긴 혹처럼 바탕에서 도드라지고, 작은 봉우리처럼 몸 밖으로 솟는다.

그런데 쪽두리는 이 둥근 돌출을 다시 둘러싼다. 쪽 위에 평평한 면을 만들고, 바깥으로 모가 난 둘레를 세운다. 쪽이 몸에서 불쑥 솟은 자연스러운 덩이라면, 쪽두리는 그 덩이를 감싸 인공적인 경계와 형상을 부여한 물건이다.

여기서 ‘네모’는 정확한 정사각형을 뜻하지 않는다. 필자가 말하는 네모스러움은 다음과 같은 형상이다.

  • 평평하거나 비교적 평탄한 면이 있다.
  • 그 면의 가장자리에 둘레가 형성된다.
  • 몸체가 하나의 덩어리로 도드라진다.
  • 옆면이 비스듬하거나 급하게 꺾여 내려간다.
  • 원추형보다 상자형·괴상형·방형에 가깝다.

한마디로 모지고 덩어리진 방형이다.

쪽두리는 둥근 공도 아니고 뾰족한 삼각형도 아니다. 윗면과 아랫면, 벌어진 몸체와 모서리를 가진 작은 괴체다. 우리 몸의 가장 높은 곳에 얹은 ‘볼록한 네모’라고 할 수 있다.

2. 몸에서 부엌으로 내려온 형상

몸 위의 쪽두리에서 내려와 집 안을 살펴보면 두지와 뒤주가 나타난다.

두지는 뒤주의 옛말이자 여러 지역에 남은 방언이다. 고전문학에도 ‘집 안에 두지 놓고, 두지 안에 궤를 놓는’ 식의 표현이 보인다. 경남뿐 아니라 제주와 충청 지역어에서도 두지·디지 등의 형태가 조사되었다. 충남 연기 지역어 연구에는 뒤주가 ‘두지’ 또는 ‘디지’로 실현되는 사례가 확인된다. 「충남 연기 지역어의 음운론적 연구」

선생님 세대의 기억과 지역에 따라서는 이를 ‘두디’에 가깝게 발음하기도 한다. 두지·두디·디지·뒤주는 서로 멀리 떨어진 말들이 아니라, 이중모음과 자음 사이에서 소리가 달리 실현된 생활어의 여러 모습으로 살펴볼 수 있다.

뒤주는 널판과 기둥으로 사방을 막아 곡식을 담는 저장용기다. 둥근 항아리와 달리 모가 나고, 윗면과 옆면이 분명하다. 바깥에서는 두둑한 덩어리로 보이고, 안에는 곡식을 담을 수 있는 빈 공간을 품고 있다.

뒤주는 두 가지 네모를 동시에 가진다.

밖에서 보면 볼록한 네모이고,
안에서 보면 오목한 네모다.

몸체는 밖으로 도드라진 괴체지만, 그 안에는 사방이 둘러쳐진 방형의 공간이 있다. 평평한 면과 모진 둘레, 속을 품은 몸체라는 점에서 쪽두리와 뒤주는 형상적으로 만난다.

쪽두리가 몸 위에 얹은 작은 산이라면, 뒤주는 집 안에 놓인 작은 지형이다.

3. ‘두두두두한’ 형상

필자가 이번에 주목하는 것은 ‘두’를 단순히 둥글다는 뜻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이유다.

두리봉을 설명할 때 흔히 ‘두리’나 ‘두루’를 둥글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실제로 두리뭉실하다·두리넓적하다·두리기둥 같은 말에는 둥근 외곽에 대한 감각이 들어 있다. 두리봉을 둥근 봉우리로 설명하는 기존 견해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필자가 지도와 위성사진으로 확인한 두리봉·두지골·뒤주골 계열의 지형은 대체로 둥근 공이나 뾰족한 원추형과 거리가 있었다. 정상부나 안쪽 면이 비교적 평평하고, 가장자리와 측면은 모지게 꺾였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두둑한 덩어리이고, 안으로 들어가 보면 산줄기가 방처럼 둘러친 공간이었다.

이 형상은 오히려 다음 말들과 함께 놓을 때 잘 보인다.

  • 둔덕
  • 두둑
  • 덩이
  • 덩어리
  • 덤·더미
  • 던·전

이 말들을 모두 동일한 어원이라고 단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말이 불러내는 형상에는 일정한 공통점이 있다. 주변보다 두두룩하게 올라오고, 하나의 덩이로 뭉치며, 위나 안쪽에는 비교적 평평한 면이 형성된다.

필자는 이를 장난스럽지만 제법 정확하게 ‘두두두두한 형상’이라고 부르고 싶다.

두두두두한 것은 반드시 동그랗지 않다. 오히려 두둑하게 나오면서 면을 만들고, 면의 가장자리에 둘레를 만든다. 그래서 원이나 삼각형보다는 네모 쪽에 가깝다. 여기서 네모는 자로 잰 사각형이 아니라, 평평한 면과 모진 둘레를 가진 덩어리형 공간이다.

4. 백제 고지명 속의 ‘두’

이 문제를 조금 더 오래된 기록으로 가져가면 백제계 고지명의 ‘두’가 나타난다.

『삼국사기』에는 백제 멸망 직후 좌평 정무가 군사를 모아 주둔했던 곳으로 두시원악(豆尸原嶽)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백제의 두시이현(豆尸伊縣), 두량윤성(豆良尹城)과 두릉윤성(豆陵尹城)·두솔성(豆率城) 등의 이표기가 전한다. 두시원악의 위치는 금산·청양·계룡산 일대와 두량윤성 등 여러 곳으로 비정되어 왔으며, 청양 정산 지역설도 오랫동안 제기되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두시원악’ 주석

도수희 교수는 백제어와 한국 고지명 연구에서 한자로 기록된 고대 지명을 한자의 표면적인 뜻만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豆尸·豆良·豆陵·豆率 같은 표기는 해당 한자의 뜻을 조합한 이름이라기보다, 당시 지명음을 빌려 적은 차자표기일 가능성을 먼저 살펴야 한다.

도수희 교수의 연구는 백제어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조건에서 『삼국사기』 지리지와 고대 사료에 기록된 지명·인명 표기를 비교하여 사라진 말의 흔적을 복원하려는 작업이었다. 그의 『한국지명 신연구』에도 옛 지명 해석, 차자표기 해독, 금강유역의 언어와 문화, 지명 해석과 고어 탐색법 등이 주요 주제로 포함되어 있다. 『한국지명 신연구』 소개

필자가 관심을 두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두시·두량·두릉·두솔이 모두 같은 말에서 갈라졌다고 지금 단정할 수는 없다. 각 표기의 음가와 해당 지역의 위치 비정도 여전히 논쟁거리다. 다만 백제의 옛 땅이름에 반복되는 ‘두’ 계열 음형과 오늘날 전국에 남아 있는 두리봉·두지골·뒤주골을 함께 놓고 살필 필요는 있다.

특히 문헌 속 음형만 비교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이름이 붙은 실제 지형을 대조해야 한다.

두리봉은 정말 둥근가.
두지골에는 실제 뒤주가 있었는가.
아니면 골짜기의 생김새가 두지처럼 모지고 둘러쳐졌는가.
고대 지명의 ‘두’도 이러한 지형 감각과 관련된 말이었는가.

이것이 이번 글이 제기하는 질문이다.

5. 밖으로 솟으면 두리봉

두리봉은 대개 주변 산줄기에서 하나의 덩어리로 도드라진다. 그런데 필자가 살펴본 여러 두리봉은 둥근 공처럼 매끈하지 않았다. 위쪽에는 비교적 평평한 면이 있고, 측면은 급하게 떨어지거나 모서리처럼 꺾였다.

이를 ‘둥근 봉우리’라고만 하면 외곽의 인상은 설명할 수 있어도 평평한 윗면과 모진 측면은 놓치게 된다.

두리봉의 ‘두리’를 둘레와 관련된 말로 보면 조금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원형이 아니라 둘레가 분명한 하나의 괴체라는 점이다. 산줄기 속에서 몸체가 독립적으로 도드라지고, 정상부의 면과 그것을 감싸는 경계가 생긴다.

쪽두리와 두리봉은 크기만 다를 뿐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

  • 밑자리가 좁다.
  • 위쪽 몸체가 벌어진다.
  • 정상부에 면이 생긴다.
  • 가장자리와 측면이 모지게 떨어진다.
  • 전체가 하나의 불룩한 덩어리로 보인다.

북한산 족두리봉이 방향에 따라 시루봉·독바위·수리봉 등으로 불린다는 점도 흥미롭다. 하나의 암봉을 두고 쪽두리·시루·독과 같은 생활용기의 이름이 겹쳐 나타난다. 이는 이름들이 같은 어원이라는 증거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봉우리의 형상을 생활도구의 몸체로 인식했다는 좋은 사례다. 북한산 족두리봉 안내

쪽두리봉·시루봉·두리봉은 모두 밖으로 솟은 형상이다.

볼록한 네모다.

6. 안으로 들어가면 두지골

두리봉의 반대편에는 두지골·뒤주골·두릿골이 있다.

두지골이라는 지명은 경북 영천과 경남 진주·함양, 충북 보은, 충남 금산, 경기 용인, 전남 순천 등 여러 지역에서 확인된다. 지역에 따라 두지골·뒤주골·두릿골이 교차한다.

일부 뒤주골은 실제 곡식 창고나 뒤주가 있었던 곳으로 설명된다. 전쟁 때 군량미를 보관했다거나 부자가 곡식을 쌓아두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런 곳까지 모두 지형 이름이라고 몰아가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형 자체를 뒤주에 빗댄 설명도 분명히 존재한다. 포천의 뒤주골·두릿골은 “쌀뒤주같이 쑥 들어간 모양”에서 이름이 생겼다고 전하며, 순창의 뒤주골은 산이 삼방을 둘러놓은 듯한 산중마을로 설명된다. 포천시 지명유래, 순창군 지명유래

이런 골짜기는 입구가 좁고 안쪽은 벌어진다. 주위 산줄기가 벽처럼 둘러서고, 골 안에는 논밭이나 마을이 들어설 만한 평평한 자리가 형성된다.

밖으로 솟은 두리봉을 엎거나 안으로 파내면 두지골이 된다.

두리봉은 밖으로 솟은 뒤주이고,
두지골은 안으로 들어간 뒤주다.

하나는 몸체이고 다른 하나는 속이다. 하나는 볼록하고 다른 하나는 오목하다. 그러나 둘 다 평평한 면과 둘러쳐진 경계를 가진다.

두리봉은 볼록한 네모, 두지골은 오목한 네모다.

7. 몸은 가장 오래된 지형도였다

사람은 처음부터 위성사진으로 땅을 보지 않았다. 자기 몸과 집, 농기구와 부엌살림을 통해 산과 골짜기를 읽었다.

산줄기는 등과 허리와 목이 되었다.
산자락은 치마폭이 되었다.
길게 뻗은 능선은 팔과 다리가 되었다.
오목한 골짜기는 품과 겨드랑이가 되었다.
그리고 평평한 면과 모진 둘레를 가진 봉우리는 쪽두리·시루·뒤주가 되었다.

우리 몸에서 가장 높은 머리 위에 또 하나의 작은 산, 쪽두리를 얹었다. 그 작은 산의 형상은 집 안으로 내려와 두지와 뒤주가 되었다. 다시 집 밖으로 나가 쪽두리봉·시루봉·두리봉으로 솟았다. 반대로 산 안쪽으로 들어가서는 두지골·뒤주골·두릿골이 되었다.

몸에서 살림으로, 살림에서 지형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연결을 곧바로 하나의 어원 계통으로 확정할 수는 없다. 쪽두리의 역사적 어원, 두지와 뒤주의 음운 변화, 백제 고지명의 ‘두’, 두리봉의 ‘두리’는 각각 더 세밀한 문헌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어원이 완전히 같아야만 하나의 의미망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경로에서 생겨난 말도 사람들이 비슷한 형상을 인식하고 사용하면서 같은 생활 의미망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필자가 제안하는 것은 우선 하나의 지형 타이폴로지다.

평평한 면을 중심으로 둘레가 형성되고, 그 경계 안팎에 하나의 공간이나 괴체가 만들어진 형상.

밖으로 밀려 나오면 모지고 덩어리진 방형이 되고, 안으로 들어가면 방처럼 둘러싸인 공간이 된다. 볼록해도 네모이고 오목해도 네모다. 모두 평평한 면과 둘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8. 둥근 땅에서 네모스러운 땅으로

기존의 두리봉 해석은 주로 ‘둥글다’에 기대어 왔다. 그러나 현장의 두리봉·두지골·뒤주골을 넓게 대조하면 둥글다는 말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필자가 보는 ‘두’ 계열의 형상은 둥근 공이 아니다.

평평한 면에 둘레가 생긴 네모스러운 덩어리다.

그것은 주변보다 두둑하게 솟는다. 하나의 덩이로 뭉친다. 윗면은 비교적 평평하고 측면은 꺾여 내려간다. 반대로 골짜기에서는 산줄기가 둘레를 세우고 그 안에 평평한 자리를 만든다.

정확한 사각형은 아니지만 원이나 삼각형보다는 네모에 가깝다. 그래서 필자는 이를 모지고 덩어리진 방형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 개념이 성립하려면 앞으로 더 많은 확인이 필요하다. 전국의 두리봉·두지골·뒤주골을 같은 기준으로 배열하고, 정상부의 형태와 측면 경사, 골짜기 입구와 내부 평탄면을 비교해야 한다. 실제 저장시설에서 생긴 이름, 지형을 본뜬 이름, 다른 어원에서 온 이름, 후대 설화로 재해석된 이름도 구분해야 한다.

두시원악과 두량윤성 등 백제계 고지명의 ‘두’가 이 형상과 직접 연결되는지는 더욱 조심스럽게 검토해야 한다. 이 글은 그것을 확정된 어원으로 제시하기보다, 문헌 언어학과 현장 지형학을 함께 놓고 검토할 가치가 있는 가설로 제안한다.

그럼에도 이 형상은 꽤 선명하다.

쪽은 둥글게 솟은 작은 봉우리다.
쪽두리는 그 봉우리를 모지고 각지게 둘러싼 작은 산이다.
두지와 뒤주는 그 작은 산의 몸체와 속을 집 안에 옮겨 놓았다.
두리봉은 밖으로 솟은 볼록한 네모가 되었고,
두지골은 안으로 들어간 오목한 네모가 되었다.

몸은 가장 오래된 지형도였고, 살림살이는 그 지형을 읽는 자였다.

그렇게 사람들은 몸에서 가장 높은 머리 위에 작은 산을 얹고, 그 산의 형상을 부엌과 곡간에서 날마다 만났다. 그리고 마을 밖으로 나가 산과 골짜기를 바라보며 다시 그 이름을 불렀다.

쪽두리에서 두디를 지나 두리봉으로.

볼록한 네모와 오목한 네모는 그렇게 몸과 살림과 땅을 오갔다.

 

하늘지도 캡쳐 : 전국의 뒤주골 -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의 뒤주골을 본다. 거의 대부분 뒤주모양으로 네모난 골짜기들이 많다.

 

하늘지도 캡쳐 : 경북 영천시 대창면 병암리 두지

쪽두리, 두디, 두리, 두지, 뒤주, 두둑, 두덕, 둔덕, 덕다리, 어덕..... 두루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