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터무늬-지명, 땅이름 이야기

[땅이름 산책] 남산은 흔한데 왜 북산은 없을까?

잉화달 2026. 5. 8. 17:24
남산은 흔한데 왜 북산은 없을까?
청룡골은 천지삐까리인데,
백호골은 왜 눈 씻고도 찾을 수 없을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지명들 속에는 심한 비대칭이 나타납니다.
마을 마다 남산은 많은데 혹시 북산 이라고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심지어 서울도 남산은 있는데 북산이라 안하고 삼각산 또는 북악산이라 따로 그 이름을 부르죠.
그 흔한 청룡골 청룡날 동청룡의 이름을 가진 지명은 전국에 수천 곳이 됩니다. 동막골도 수백군데가 있죠.
그런데 백호라는 지명과 서막골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청양 신대2리 사자산마을의 백호돌아, 여수 백야도의 백호산, 나주 가운리의 백호봉 정도가 제가 35년을 전국을 훑어보아도 손에 꼽는 몇 안되는 백호 관련 지명 이었고, 서막골은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분명 우백호의 기운이 출중한 한양 도성의 백호날(백호산줄기)에 해당하는 인왕산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분명 백호인데, 이름만 보면 어질인(仁)을 쓰는 매우 온화함을 의미하는 산입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 내내 사람들은 인왕산의 호랑이라며 다들 혀를 내두르는 호랑이와 관련한 피해나 호랑이 출현을 인왕산과 결부시키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인왕산을 호랑이산이라 부르지 않고 가능한 부드러운 이름으로 바꿔 부른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풍수지리 사상과 음양오행의 원리에 그 답이 있습니다. 단순히 이름의 빈도 차이가 아니라, 그 방위와 상징이 갖는 ‘에너지의 성격’ 때문입니다.
​왜 '북산'는 없고 '남산'은 많을까?
​가장 큰 이유는 배산임수의 원칙 때문입니다.
마을의 뒤편(북쪽)에 있는 산은 마을의 뿌리이자 근간인 주산(主山) 혹은 진산(鎭山)이라 부릅니다. 이는 마을을 보호하는 엄숙한 존재이기에 '북쪽 산'이라는 단순한 방위명보다는 고유한 이름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마을 앞(남쪽)에 있는 산은 책상처럼 낮게 놓였다고 하여 안산(案山)이라 부릅니다. 주산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앞에 보이는 남쪽 산"이라는 뜻의 '남산'이 대명사처럼 굳어진 것입니다.
​'청룡'은 흔한데 '백호'는 왜 드물까?
​사신사(四神砂)인 좌청룡 우백호 중에서도 지명에서는 유독 청룡이 압도적입니다. ​생명력의 상징으로 오행에서 청룡(동쪽)은 나무(木)와 봄, 그리고 시작과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는 입장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기 좋은 이름입니다.
반대로 백호(서쪽)는 쇠(金), 가을, 그리고 숙살지기(肅殺之氣), 즉 죽음이나 무서운 기운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백호는 주산을 보호하는 든든한 조력자이지만, 그 성질이 거칠고 사납다고 보았기에 마을 이름이나 골짜기 이름에 직접적으로 '백호'를 쓰는 것을 꺼렸습니다. 대신 '흰 돌'이나 '서산' 같은 완곡한 표현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개인적 추정과 견해이지만 충남 서산의 경우도 이에 해당할 수 도 있습니다.(매우 조심스럽게)
​반대적 개념이긴 하지만 경기도 안산(安山市)의 지명 유래도 이 풍수적 '안산'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마을 앞에 적당한 높이의 산(안산)이 있으면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고 모인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특정 지명이 마땅치 않을 때 그 기능을 따서 '안산'이라 부르거나, 남쪽에 위치했다는 이유로 '남산'이라 부르며 마을의 심리적 경계선으로 삼은 것은은 아닐까 합니다.
취길피흉(取吉避凶)은 행복을 목적으로 삼는 당연한 마을의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활동 입니다. 그래서 지명은 단순히 방위를 나타내는 좌표가 아니라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이 무서운 것은 피하고(피흉), 좋은 기운은 가까이 두려 했던(취길) '집단적인 염원의 지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남산이 많고 북산이 없는 것은 우리가 등을 기댈 곳으로 '주산'에 해당하는 산은 우러러보고, 마주 볼 곳으로 '안산'은 친근하게 불렀던 조상들의 시선이 담긴 결과 아닐까요? 이렇게 지명들의 불균형이야말로 한국인이 땅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모습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는 서산과 인왕산입니다.
서산(瑞山)이라는 지명의 유래와 그 안에 담긴 풍수적 맥락을 짚어보면, 질문하신 '백호'와 '서산'의 관계가 아주 흥미롭게 풀립니다.
​서산(瑞山)이라는 이름은 '백호'라는 방위적·공격적 표현을 피하고, 그 자리에 상서로울 서(瑞)자를 넣어 땅의 기운을 다스린 전형적인 사례로도 이야개 해 볼 수 있겠습니다.
​방위의 중첩으로서 풍수에서 서쪽은 백호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윗 글에서도 언급하지만 '백호산'이라고 부르면 그 기세가 너무 강해 마을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서산'은 이름 그대로 "상서로운 산"이라는 뜻입니다. 서쪽(백호)의 거친 기운을 '상서로움'으로 순화시켜 마을을 복된 땅으로 만들고자 했던 조상들의 인문적 배려가 담겨 있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서산 지역의 지명 유래를 보면 단순히 '서쪽에 있는 산'이라는 물리적 의미를 넘어 다른 의미로 해석을 합니다. 서산의 옛 이름은 '부성(富城)'이었습니다. 이후 고려 시대에 '서산'이라는 명칭이 등장하는데, 지역에서는 이곳의 산세가 수려하고 길조가 많은 곳이라 하여 '상서로운 기운이 서린 산'이라고 풀이합니다.
서산의 진산은 부춘산(富春山)으로 봅니다. 부춘산이 북쪽에서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주산), 그 기운이 서쪽으로 뻗어 나가는 흐름 속에서 '서산'이라는 이름이 지역 전체를 상징하는 길한 명칭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비슷한 사례로 그 유명한 인왕산과 함께 대체로 마을이나 도성을 둘러싼 산들의 서쪽 줄기에 해당하는 명칭으로 백운산과 백운대도 있습니다.
​백운산(白雲山)의 경우 백호(흰 호랑이)의 '백'자는 유지하되, 호랑이 대신 구름(雲)을 넣어 부드럽게 표현하는 경우입니다. ​
결국 지명을 정하고 부르는 행위 자체가 그 지역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거대한 '부적' 역할을 염원 했던 내가 사는 마을과 도시의 생활인으로서 공간 주권자로서 주민들의 마음이 담긴 소중한 자주적 활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