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노트/시나부랭이

오십줄의 시와 고드름의 고

잉화달 2026. 5. 15. 18:42

오십의 시와 고드름의 고

시시한 시간
— 詩·時·五十
시운(五十) 넘어 시들어가니
시~~ 줄기도 시원찮고
시도 때도 없이 시~만 마렵다.
이런, 시~~~
시운 넘어 시답잖으니
시(詩)나 한번 써 시작?
시발.점……
세상에 쉬운 게 없다.
시시한 댓글이나 달아놓는
시답잖은 놈 하나가
시운(五十) 먹고 시들었음을
순순히 시인합니다.


겨울밤이 키우는 것들

— ‘고’ 자 소리 모음
[골짜기 칠중고(七重苦)]
고독, 고생, 고집, 고립, 고통, 그리고 고뿔……
고스란히 다가오는 고약한 추위의 고착.
고만고만한 고목 끝에 고드름이 열리고,
고깟 추위에도 고시랑대는
고라니 새끼의 밤이 깊어간다.

[숲의 고진감래(苦盡甘來)]
고목 아래 고사리도 꽁꽁 얼어붙은 밤,
고깟 몸집에도 고단한 꿈 하나 품고
고라니 새끼는 겨울 숲을 건넌다.
언 땅도 견디다 보면 풀리고,
고생 끝에 고사리 순도 다시 오르겠지.

[마을의 고주망태]
고주망태 고 영감의 고래고래 술주정에
고만하라고 고함치는 고만고만한 마눌님.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고양이만 고개를 처박고 고요히 숨는다.

[한 지붕 고드름]
고삐리 자식 놈 버릇 좀 고쳐보려고
고시랑고시랑 이어지는 잔소리.
빳빳하게 고추세운 고팡 처마 끝에는
고드름만 고실고실 자란다.
사람 속은 고쳐 쓰기 어렵다는데,
겨울밤은 고드름 하나 고쳐 세우는 데에도
저리 긴 시간을 쓴다.
고드름 주름살
사양빛 그치고 나면
붉다 못해 어두워지는 저녁.

11월의 고드름은
밤을 먹고 다시 자라겠다.
고주배기 같은 영감탱이 고집도
얼었다 풀렸다
조금씩 고쳐가며,
고만고만하게 고여 모인 것들끼리
처마 끝에 매달려
제 무게를 배운다.
고실고실 맺힌 고드름은
얼고 또 풀려야 겨우 자라는 법이다.
저 우두커니 앉은 어르신의
주름살처럼.


ㅡㅡㅡㅡ

메모장 구석에서 오래된 시 몇 편을 발견했다.
내 시라고 적혀 있긴 한데, 하도 말장난을 많이 하고 살아서인지 가끔은 내가 쓴 것인지, 어디서 주워들은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런데 옆에 그날 찍어둔 고드름 사진이 함께 붙어 있었다.
아, 이건 내 것이 맞겠다 싶었다.
오십을 넘긴 몸의 시답잖은 농담과, 겨울밤 처마 끝에서 고실고실 자라던 고드름의 고집.
그 둘이 얼었다 풀렸다 하며 어느새 이런 시시한 시가 되어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이 시들은 시가 아니라,
시답잖은 말장난이 겨울 처마 밑에서 잠깐 얼어붙은 것이다.
오십의 몸은 자꾸 시시해지고,
고드름은 밤마다 고집스럽게 자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시답잖게 시를 쓰고,
고드름처럼 조금씩 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