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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산책] 복숭아 뼈? - 탄방동 숭어리샘 중심 대전 서부 옛 샘 이름 의미망

잉화달 2026. 7. 7. 02:01

[땅이름 산책] 탄방동 숭어리샘과 대전 서부의 옛 샘들

— 둥글게 솟는 물, 숭이 계열 지명, 그리고 숭어 설화의 문화적 층위

1. 들어가며

 
대전광역시 서구 탄방동, 오늘날 숭어리샘 네거리 일대에는 과거 ‘숭어리샘’이라 불리던 자연샘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샘의 원형은 도시 개발 과정에서 사라졌지만, 지명과 전설, 향토사 자료 속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대전 서부 지역에는 숭어리샘 외에도 괴정동 배우니샘, 둔산동 둔지미샘이 함께 전해진다. 대전도시재생지원센터의 샘머리 물순환 테마공원 소개 자료는 괴정동 배우니샘, 탄방동 숭어리샘, 둔산동 둔지미샘을 대전의 3대 샘으로 소개하고, 둔지미샘 위쪽 마을을 대대로 ‘샘머리’라 불렀다고 설명한다.
이 글은 탄방동 숭어리샘을 중심에 두되, 이를 단독 지명으로만 보지 않고 배우니샘·둔지미샘·샘머리 지명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숭어리샘’을 단순히 “숭어가 나온 샘”이라는 전설로만 이해하기보다, ‘숭이·송이·송아리’ 계열의 형태 의미망, 전국의 ‘숭이’ 계열 지명, 그리고 숭어가 효자설화 속에서 지닌 상징성을 함께 검토해 본다.

2. 문헌상 전해지는 대전 서부의 옛 샘들

먼저 괴정동의 ‘배우니샘’은 문헌상으로는 ‘배우니’라는 마을 이름에 딸린 샘으로 보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다. 대전시립박물관의 《대전지명지》 기반 자료는 ‘배우니’를 ‘백운리(白雲里)’라고 병기하고, “백운리 > 백운니 > 배우니”로 변하였으며 지금도 백운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배우니샘을 곧바로 “물이 배어 나오는 샘”으로 풀이하는 것은 문헌상 근거가 약하다. 다만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배우니’를 ‘배운이’로 다시 듣고, “배운이가 마시는 샘”과 같은 식의 생활 풀이가 덧붙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해석은 원래 어원이라기보다, 이미 굳어진 지명을 후대 사람들이 익숙한 말로 다시 이해한 민간어원적 스토리텔링으로 다루는 것이 적절하다.
둔산동 일대의 ‘샘머리’는 둔지미샘과 함께 보아야 한다. 앞의 자료에서는 둔산동에 있던 둔지미샘 위쪽 마을을 대대로 샘머리라 불렀다고 설명한다. 충청투데이의 둔산동 지명 기사도 옛 둔산 일대가 윗둔지미, 아랫둔지미, 샘머리 등의 지명으로 나뉘어 있었다고 소개한다.
따라서 샘머리는 “전체 수계의 발원지”라고 크게 확대하기보다, 우선은 둔지미샘을 기준으로 한 ‘샘의 위쪽 마을’, 곧 ‘샘머리’라는 위치 명칭으로 보는 것이 무리가 적다. 여기서 ‘머리’는 물길의 관념적 시원이라는 뜻도 떠올리게 하지만, 문헌상으로는 우선 샘을 중심으로 한 생활 공간의 위쪽이라는 뜻이 더 안정적이다.

3. 숭어리샘의 기존 전승과 그 한계

숭어리샘에 대해서는 “샘에서 숭어가 나왔다”는 식의 유래담이 전해진다. 그러나 대전 탄방동은 내륙 평지이며, 숭어는 일반적으로 바다와 하구, 또는 기수역을 오가는 물고기이다. 따라서 자연샘에서 실제로 숭어가 살았거나 잡혔다고 보기는 지리적·생태적으로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숭어 이야기를 단순히 “틀린 이야기”로만 밀어낼 필요는 없다. 많은 지명 전설은 지명이 먼저 존재한 뒤, 후대 사람들이 그 소리를 익숙한 단어와 이야기로 다시 해석하면서 생겨난다. ‘숭어리샘’ 역시 먼저 ‘숭어리’라는 소리와 장소 기억이 있었고, 이후 사람들이 이를 물고기 ‘숭어’와 연결하면서 샘 전설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기존의 향토적 설명에서는 ‘숭어리샘’을 ‘솟는 샘’ 또는 ‘솟은 샘’ 계열의 말이 음운 변화를 거쳐 굳어진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이 해석은 숭어라는 물고기보다 물이 솟는 현상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다만 여기에 한 가지 층위를 더 보탤 수 있다. 그것은 물이 단순히 솟는다는 기능적 설명을 넘어, 물이 어떻게 보였는가, 곧 샘물이 처음 피어오를 때의 시각적 형상을 살피는 일이다.

4. ‘숭어리’의 형태적 해석: 송알송알, 송아리진 물

자연샘은 땅속의 물이 흙과 자갈 틈을 밀고 올라오며 작은 물방울이나 물무리처럼 맺히는 모습을 보인다. 샘 바닥에서 물이 피어오를 때, 그것은 마치 송알송알 맺히거나 몽글몽글 뭉쳐 오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런 모습은 ‘송이’, ‘송아리’, ‘보숭이’, ‘복숭아리’ 같은 말들이 지닌 둥글고 뭉친 형태감과 연결된다. ‘숭어리’도 이 의미망 속에서 보면 물고기 이름이라기보다, 둥글게 뭉치고 맺히는 형상을 가리키는 생활어적 표현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샘터의 외형도 함께 고려할 수 있다. 자연샘 주변에는 물이 흩어지지 않도록 돌을 두르거나 우물틀을 만들곤 한다. 숭어리샘 역시 원형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샘을 감싼 둥근 돌틀이나 바위 배치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숭어리’는 물이 솟는 모습과 샘을 감싼 구조의 둥근 형상이 함께 작용한 이름일 수 있다.
따라서 숭어리샘은 “숭어가 나온 샘”이라기보다, 물이 송알송알 맺히며 솟거나, 샘터가 둥글게 감싸인 형상을 반영한 이름으로 검토할 여지가 있다.

5. 전국의 ‘숭이’ 계열 지명과 숭어리샘

이 해석은 전국의 ‘숭이’ 계열 지명과 함께 보면 더 설득력을 얻는다. 제주 조천읍 북촌리의 ‘너븐숭이’는 대표적인 사례다. 공개 자료들은 너븐숭이를 “넓은 바위”, “널찍한 바위”라는 뜻으로 풀이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숭이’가 특정 동물 이름이 아니라, 바위·돌밭·너럭바위·넓게 드러난 지형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는 사실이다. ‘너븐숭이’의 ‘숭이’가 바위 또는 지형 덩어리와 관련된다면, ‘숭어리샘’의 ‘숭어리’ 역시 물고기 숭어로만 한정해 볼 필요가 없다.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취병리의 ‘검숭이고개’와 ‘검숭이골’도 참고할 만하다. 원주시 지명유래 자료에는 검숭이고개가 작달매기에서 송원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며, 검숭이골은 그 고개 아래 작달매기 쪽 골짜기라고 설명되어 있다. 다만 이 자료는 ‘검숭이’의 어원까지는 풀이하지 않는다.
이 밖에도 경남 고성의 밤숭이골, 경주의 숭이골, 강원도의 큰숭이·작은숭이·밤숭이 계열 지명들이 함께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들 이름은 각각의 현장 지형과 문헌 확인이 더 필요하지만, 적어도 ‘숭이’가 여러 지역에서 골짜기, 고개, 바위, 둥근 지형 덩어리와 결합해 쓰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관점에서 보면 숭어리샘은 ‘숭어’라는 물고기 이름에서 곧장 유래한 것이 아니라, ‘숭이·송이·송아리’ 계열의 형태어와 관련된 이름일 가능성이 있다. 물이 둥글게 맺히고, 샘터가 돌이나 바위로 동그스름하게 감싸인 자리였기 때문에 ‘숭어리샘’이라 불렸을 수 있다는 것이다.

6. 그래도 숭어 전설을 버릴 수 없는 이유

그러나 숭어 전설을 단순한 오해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지명은 어원만으로 살아남지 않는다. 지명은 사람들이 그 이름을 다시 듣고, 다시 해석하고, 마을의 이야기로 엮어 가는 과정 속에서 오래 살아남는다.
숭어는 한국 민간 설화에서 효성과 관련해 자주 등장하는 물고기 가운데 하나다. 잉어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병든 부모가 먹고 싶어 하는 귀한 물고기, 한겨울이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 효자의 기도로 얻어지는 물고기로 등장하는 사례가 있다.
홍성군 금마면 신곡리의 효자 복한 전승은 이를 잘 보여준다. 공개 자료에 따르면, 복한은 아버지 병환 때 물을 길어 약을 달였고, 어느 날 집 앞에 물이 솟아 ‘효자샘’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후 어머니가 병이 들어 모쟁이, 곧 숭어 새끼를 먹고 싶다고 하자, 복한이 기도한 끝에 샘에서 모쟁이를 얻어 어머니께 고아드렸고 병이 나았다고 전한다. 이 뒤로 효자샘은 ‘모쟁이샘’이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홍주신문 자료 역시 복한 성효각과 관련해 부모 병 구완, 모쟁이샘, 효자샘 이야기가 여러 문헌과 구전을 통해 전해진다고 소개한다. 또 다른 홍성 지역 기사에서는 복한의 효행이 명나라 조정에까지 알려졌고, 명나라 황제의 칭송이 담긴 국서를 받았다는 전승도 소개한다. 다만 이 대목은 현재 확인 가능한 공개자료만으로는 중국 측 원문 기록까지 대조하기 어렵기 때문에, 본문에서는 ‘명나라 황제 칭송 전승’으로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이 적절하다.
여기서 모쟁이는 숭어 새끼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숭어는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다양하며, 전라도 영산강 변에서는 성장 과정에 따라 모쟁이·모치·무글모치·댕기리·목시락·숭어 등으로 부른다는 자료도 확인된다.
이런 사례를 보면, 숭어는 단순한 물고기가 아니라 효성, 기원, 병구완, 하늘의 감응과 연결되는 설화적 상징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탄방동 숭어리샘의 “숭어가 나왔다”는 이야기도 사실 여부만 따져 배제할 것이 아니라, 후대 사람들이 샘 이름을 효자설화와 비슷한 문화적 문법 속에서 다시 이해한 결과로 볼 수 있다.

7. 물고기 숭어의 형태감과 ‘둥구스름함’

흥미로운 점은 물고기 숭어 자체도 형태적으로 완전히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숭어는 앞부분이 둥구스름하고 도톰한 인상을 준다. 그러므로 ‘숭어리’라는 이름이 본래 둥근 물무리나 둥근 지형을 가리켰다 하더라도, 후대 사람들이 이를 물고기 숭어와 연결한 데에는 나름의 시각적 자연스러움이 있었을 수 있다.
즉 숭어 전설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둥글게 맺힌 것’, ‘도톰하게 솟은 것’, ‘물과 관련된 것’이라는 의미망 속에서 자연스럽게 덧붙은 이야기일 가능성이 있다. 숭어리샘의 원래 이름이 형태어 계열이었다면, 후대의 숭어 전설은 그 이름을 완전히 왜곡한 것이 아니라, 같은 둥근 형상 감각을 물고기 설화로 옮겨 놓은 문화적 재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8. 배우니샘·숭어리샘·둔지미샘·샘머리의 의미망

이제 대전 서부의 옛 샘 이름들을 함께 놓고 보면, 각각의 이름은 물과 땅을 바라보는 관찰 지점이 조금씩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배우니샘은 문헌상 ‘백운리 > 백운니 > 배우니’ 계열의 마을 이름에 딸린 샘으로 보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다. 여기에 “배운이가 마시는 샘” 같은 주민 구전이 있었다면, 그것은 후대의 생활적 재해석으로 볼 수 있다.
숭어리샘은 물이 송알송알 맺혀 솟는 모습, 또는 샘터를 감싼 둥근 돌틀과 바위 형상을 반영한 이름일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후대 사람들이 물고기 숭어 전설을 덧붙였고, 그 전설은 효자설화 속 숭어·모쟁이의 문화적 상징성과도 연결된다.
둔지미샘은 둔산동 옛 중심 지명인 둔지미와 연결된 대표 자연샘이다. 그리고 샘머리는 둔지미샘 위쪽에 있던 마을 이름으로, 샘을 기준으로 한 위치 감각이 반영된 지명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이름은 하나의 단일한 어원 체계로 묶기보다, 물이 솟는 자리, 물이 고이는 형태, 샘을 중심으로 한 마을의 위치, 후대의 설화적 상상력이 겹쳐진 지명군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9. 결론

탄방동 숭어리샘에 전해지는 “숭어가 나온 샘”이라는 이야기는 생태적 사실로 보기에는 조심스러운 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한 오류로만 볼 필요는 없다. 지명은 원래의 음과 뜻이 시간이 지나며 다시 해석되고, 마을 사람들의 생활 기억과 설화적 상상력이 덧붙으며 살아남기 때문이다.
숭어리샘의 ‘숭어리’는 물고기 숭어에서 직접 유래했다기보다, 물이 송알송알 맺혀 솟는 모습이나 샘터를 감싼 둥근 지형·돌틀과 관련된 ‘숭이·송이·송아리’ 계열의 형태어였을 가능성이 있다. 제주 너븐숭이, 원주 검숭이고개·검숭이골, 그리고 여러 지역의 밤숭이골·숭이골 계열 지명은 이러한 해석을 검토할 수 있는 비교 사례가 된다.
동시에 숭어는 효자설화 속에서 병든 부모가 먹고 싶어 하는 귀한 물고기, 효자의 기원 끝에 하늘이 내려주는 물고기로 등장한다. 홍성 금마면 신곡리의 효자 복한과 모쟁이샘 전승은 그 대표적 사례다. 특히 이 전승에서 모쟁이는 어머니의 병환을 고치기 위해 구한 숭어 새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숭어리샘의 숭어 전설 역시 후대적 민간어원이라 하더라도, 그 자체로 샘과 효성, 기원, 생명의 회복을 연결하는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결국 숭어리샘은 “숭어가 실제로 살았던 샘”이라기보다, 물이 둥글게 솟고, 사람들이 그 물을 귀하게 여기며, 시간이 흐른 뒤 숭어와 효자설화의 상징성까지 덧입힌 이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배우니샘, 둔지미샘, 샘머리와 함께 놓고 보면, 대전 서부의 옛 샘 이름들은 단순한 식수원의 명칭이 아니라 사람들이 물과 땅을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하고, 이야기로 엮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생활지명의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