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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산책] 대전 원신흥동 옛 지명 ’덜레기’의 지형적 유래와 문화적 가치에 관한 소고

잉화달 2026. 7. 6. 21:02

대전 원신흥동  지명 덜레기 지형적 유래와 문화적 가치에 관한 소고

덕락리(德樂里) 전승, 도상구릉성 지형, 구전 지명요의 교차 검토

1. 연구 배경과 목적

대전광역시 유성구 원신흥동에는 오늘날 ’덜레기근린공원’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다. ’덜레기’는 현대 공원명으로도 쓰이지만, 본래는 원신흥동과 서구 도안동 일대의 옛 자연마을·들녘·구릉 지형과 관련된 토박이 지명으로 보인다.
원신흥동 일대는 조선시대 말기에 벌판에 새로 이룩한 마을이라 하여 신흥이라 불렸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문산리·덕락동·서성동·양지동의 일부가 병합되어 신흥리가 되었다. 유성구청의 원신흥동 마을유래 자료는 이 지역을 “중앙에 낮은 산지가 조성되었을 뿐 사방이 들과 야산지대로 덮여있는 비교적 들이 많은 지역”으로 설명하며, 서쪽과 동쪽에 냇물이 흐르고 모래가 많은 지역이었다고 기록한다.
이 보고서는 기존 문헌에 전하는 덕락리(德樂里) 유래담을 정리하되, ’덜레기’라는 이름을 지형·음상·구전 동요의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덜레기를 단순히 한자 지명 덕락리의 변음으로만 보지 않고, 하천과 들, 낮은 구릉이 만나는 자리에서 형성된 도상구릉성 지명으로 해석할 가능성을 검토한다.

2. 문헌과 전승 속의 덜레기

2.1 덕락리(德樂里)로 기록된 덜레기

대전서구문화원의 『서구의 마을유래』는 덜레기를 행정지명 덕락리(德樂里)로 설명한다. 해당 기록에 따르면 덜레기는 신흥리 남쪽 들녘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수백 년 전 목씨(睦氏)라는 큰 부자가 살았다고 한다. 그는 덕이 많고 풍류를 즐기며 즐겁게 생활하였으므로 덕락리라 불리게 되었고, 뒤에 발음이 변하여 ’덜레기’가 되었다고 전한다.
— 출처: 대전서구문화원, 『서구의 마을유래』, 2005, p.48.
이 설명은 마을유래집에서 흔히 보이는 인물담형 지명 해석의 성격을 지닌다. 덕 있는 인물, 큰 부자, 풍류, 즐거운 생활, 그리고 좋은 뜻을 지닌 한자 표기가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전승은 마을의 품격과 자긍심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다만 지명 형성의 실제 순서를 따질 때에는, ’덕락리’라는 한자 표기가 먼저 있었고 그것이 ’덜레기’로 변했다고 단정하기보다, 본래 구전되던 ’덜레기’라는 토박이 지명을 후대에 德樂里라는 한자로 받아 적었을 가능성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2.2 도안동 일대의 문중·유교 문화와 지명 한자화

도안동과 원신흥동 일대는 단순한 농촌 들녘만이 아니라, 유교적 인물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던 지역이기도 하다. 『대전의 마을특성연구』는 이 지역이 충주 박씨 100여 호가 집성촌을 이루었던 곳이며, 화담 서경덕의 문인 사암 박순, 고청 서기의 문인 돈암 박희성, 오한당 박희철 형제, 백련당 민재문, 제호 박로 선생 등을 모신 돈파사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 출처: 강병수 외, 『대전의 마을특성연구』, 2019, p.124.
한국문화원연합회의 지역문화 자료에서도 대전 서구 도안동에 사암 박순 선생 등을 기리는 돈파사 유허비가 있었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고려하면, 토박이 지명 ’덜레기’가 행정 문서나 유교적 설명 체계 속에서 德樂里라는 좋은 뜻의 한자 표기로 정리되었을 가능성도 자연스럽다.
즉, 덕락리 전승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지역의 유교 문화와 마을 자긍심이 결합한 후대 해석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지명학적으로는 덕락리와 덜레기를 상하 관계로만 보지 않고, 한자 지명·토박이 지명·마을 전승이 서로 다른 층위에서 공존한 사례로 보는 것이 더 안전하다.

3. 구전 동요에 남은 덜레기

유성구청의 원신흥동 마을유래 자료에는 원신흥동에 사창이 있을 때 불렀다는 민요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문산에서 문을 열고 나와
덜레기에서 덜렁덜렁 걸어가서
음짓벌에서 음칫 쳐다보니
도안에서 편안하게 쉬더라
사용자가 제시한 지역 구전형은 다음과 같이 조금 다른 형태를 보인다.
문산에서 문을 열고 나와서
덜레기 덜레기는 행정지명으로 덕락리라 하고
덜렁덜렁 걸어가면서
음지덜레기에서 쳐다보니
도안에서 편안하게 쉬더라
이 노래는 지명과 동작, 지명과 뜻풀이가 결합한 말놀이처럼 보인다. 문산은 ‘문을 열고’, 덜레기는 ‘덜렁덜렁’, 음짓벌 또는 음지덜레기는 ‘쳐다봄’, 도안은 ’편안하게 쉼’과 연결된다. 여기에는 단순한 음운 유희만이 아니라, 문산·덜레기·음지덜레기·도안으로 이어지는 실제 공간 이동의 감각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있다.
도안동 농요 관련 기록도 이러한 해석을 보완한다. 『농민신문』의 1998년 「농요를 찾아서—대전 도안동농요」 기사에 따르면, 도안동은 가락리·가둔리·음지덜레기·도안리 등 네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곳으로 설명된다. 이는 ’음지덜레기’가 단순한 노랫말이 아니라 도안동 일대의 실제 자연마을 지명으로 쓰였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덜레기는 행정지명 덕락리, 자연마을명 음지덜레기, 도안동 농요와 원신흥동 민요 속 지명요가 서로 겹쳐 있는 이름이다. 이 점에서 덜레기는 문헌 지명인 동시에 생활 지명이며, 노래 속에 남은 이동 경로의 이름이기도 하다.

4. 지형적 배경: 낮은 산지, 들, 하천, 모래땅

원신흥동 일대는 오늘날 도시화가 진행되어 옛 지형을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지만, 문헌 설명을 통해 몇 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유성구청 자료는 원신흥동을 중앙에 낮은 산지가 있고 사방이 들과 야산지대로 덮인 지역, 서쪽과 동쪽에 냇물이 흐르고 모래가 많은 지역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은 덜레기 지명 해석에서 중요하다. 덜레기는 높은 산악 지명이라기보다, 낮은 산지와 들녘, 하천과 모래땅이 만나는 경계부의 이름으로 보인다. 이 같은 환경에서는 하천의 유수 작용, 침식과 퇴적, 모래땅의 이동, 낮은 구릉의 잔존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지형학적으로는 이런 낮은 구릉을 도상구릉(島狀丘陵), 잔구(殘丘), 또는 평탄화된 지형 속에 남은 독립 구릉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현재 단계에서 덜레기를 엄밀한 의미의 잔구 또는 인젤베르크로 확정하기 위해서는 지질도, 구지형도, 일제강점기 지형도, 항공사진, 하천선 변화 자료 등을 추가로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본 보고서에서는 덜레기를 “도상구릉성 지형” 또는 “들녘 속 독립 구릉성 지명”으로 신중하게 표현한다.

5. ’덜레기’의 지명학적 해석 가능성

5.1 덕락리에서 덜레기로 변했는가, 덜레기를 덕락리로 적었는가

기존 유래담은 덕락리(德樂里)가 발음 변화를 거쳐 덜레기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한국 지명사에서는 토박이 지명을 한자로 음차·훈차하거나, 비슷한 소리의 길상 한자로 표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므로 덕락리와 덜레기의 관계는 한 방향으로 단정하기보다 다음 두 가능성을 함께 열어두어야 한다.
첫째, 문헌 전승처럼 덕락리라는 한자 지명이 먼저 있고, 그것이 구어 속에서 덜레기로 변했을 가능성이다.
둘째, 생활 속 토박이 지명 덜레기가 먼저 있었고, 이를 행정 기록이나 마을유래 설명에서 德樂里로 받아 적었을 가능성이다.
현재 확보된 자료만으로 어느 쪽을 확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덜레기’가 노래와 자연마을명, 공원명, 지역민의 구술 속에 넓게 남아 있고, 해당 지형이 들녘 속 낮은 구릉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고려하면, 토박이 지명으로서의 덜레기를 먼저 검토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5.2 덜다, 덜어내다, 덜렁 남다

‘덜레기’라는 소리는 ‘덜다’, ‘덜어내다’, ‘덜렁’, ’덩그러니’와 같은 우리말의 음상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이를 엄밀한 어원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지형 이미지와 음상 사이의 관계를 살피는 보조 해석으로는 유효하다.
하천은 들판을 가로지르며 땅의 옆구리를 밀고 깎는다. 낮은 구릉 가장자리는 유수의 흐름에 의해 깎이고, 주변의 낮은 지대는 모래와 퇴적물로 메워진다. 그 결과 큰 산줄기나 구릉대에서 일부가 덜려 나온 듯한 작은 언덕, 또는 들판 가운데 덜렁 남은 지형이 형성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덜레기는 “덕이 있어 즐거운 마을”이라는 한자식 해석과 별개로, “물이 덜어내고 들판에 남긴 구릉”이라는 자연지명적 감각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원신흥동 일대가 냇물과 모래가 많은 들녘이었다는 설명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볼 수 있다.

5.3 유수와 용의 이미지

옛사람들은 하천의 흐름을 단순한 물리 현상으로만 보지 않았다. 물길은 땅을 감고 돌며, 밀고, 깎고, 퇴적시키는 살아 있는 힘으로 인식되었다. 때로는 용이 몸을 틀며 지나가는 모습처럼 상상되기도 했다. 덜레기 주변의 하천과 도랑 역시 구릉의 일부를 밀어내고, 산자락을 덜어낸 듯한 인상을 남겼을 수 있다.
따라서 덜레기는 “하천의 유수가 구릉 가장자리를 덜어낸 듯한 지형”이라는 감각과 연결해 볼 수 있다. 이는 과학적 지형학의 침식·퇴적 설명과 민간적 상상력의 용·물길 이미지가 만나는 지점이다. 다만 이 해석은 현재로서는 지형과 음상, 구전 자료를 결합한 가설로 제시하는 것이 적절하다.

6. 통미·툭뫼·딴산·섬백이 계열과의 비교

덜레기는 전국의 여러 토박이 지명 가운데, 들녘 속에 따로 솟거나 남은 구릉을 가리키는 이름들과 비교할 수 있다.
통미는 들판 가운데 통째로 남은 작은 뫼의 감각을 지닌다. 툭뫼는 평지 위로 툭 튀어나온 산 또는 언덕의 시각적 돌출성을 강조한다. 딴산과 딴뫼는 본래 산줄기에서 따로 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산을 가리킨다. 섬백이는 논·물길·습지 사이에 섬처럼 박힌 땅의 이미지와 맞닿는다. 딴뚝이나 딴덕은 산이라 부르기에는 작지만 평지보다 볼록하게 솟은 낮은 언덕이나 둑의 성격을 지닌다.
덜레기는 이들과 같은 계열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곧 들판 속에 남은 구릉, 본산에서 덜려 나온 듯한 땅, 물길과 도랑 사이에 덜렁 놓인 장소를 가리키는 지명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통미·툭뫼·딴산·섬백이와의 비교는 지형적·음상적 유사성에 따른 해석이며, 덜레기의 직접 어원을 증명하는 자료는 아니다. 따라서 이 비교는 “동질적 지명군과의 해석 가능성”으로 제시하는 것이 적절하다.

7. 구전 동요의 공간 해석

7.1 문산에서 문을 열고 나와

“문산에서 문을 열고 나와”라는 구절은 지명과 뜻풀이가 결합한 전형적인 지명요의 방식이다. 문산을 실제로 門山이라 표기했는지, 또는 단순히 ’문’이라는 소리를 살린 말놀이인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노래 속에서는 문산이 출발점, 곧 어떤 공간을 열고 나오는 장소로 기능한다.

7.2 덜레기에서 덜렁덜렁 걸어가서

“덜레기에서 덜렁덜렁 걸어가서”는 덜레기 해석의 핵심 구절이다. 여기서 덜렁덜렁은 걷는 몸의 리듬이면서, 들판 가운데 따로 남은 지형의 이미지와도 잘 맞는다. 도랑과 논둑, 낮은 구릉의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 행위는 평탄한 도로를 걷는 것과 다르다. 몸은 흔들리고, 발걸음은 덜렁덜렁 이어진다.
이 구절은 지명과 보행감각이 결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지도를 보며 마을을 기억한 것이 아니라, 길을 걸으며 마을을 기억했다. 덜레기는 그런 보행의 리듬 속에서 살아남은 이름이다.

7.3 음짓벌 또는 음지덜레기에서 쳐다보니

유성구청 자료에는 “음짓벌에서 음칫 쳐다보니”로 전하고, 사용자 구술 자료와 『대전의 마을특성연구』 인용 맥락에서는 “음지덜레기에서 쳐다보니”라는 형태가 확인된다. 두 형태는 서로 다른 전승형일 수 있으며, 음짓벌과 음지덜레기가 지리적으로 인접하거나 의미상 겹쳤을 가능성도 있다.
“음지”라는 말은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그늘진 쪽, 곧 사면의 방향성과 관련된다. 만약 음지덜레기가 실제 자연마을명이라면, 이는 덜레기가 단순한 평지가 아니라 사면과 그늘을 형성하는 낮은 구릉성 지형이었음을 시사한다. 다만 “음지”만으로 덜레기가 반드시 도상구릉이었다고 증명할 수는 없으므로, 이 구절은 지형 해석을 보완하는 정황 자료로 보아야 한다.

7.4 도안에서 편안하게 쉬더라

“도안에서 편안하게 쉬더라”는 도안이라는 지명과 ’편안함’의 의미를 연결한다. 도안이라는 이름 자체가 편안한 장소라는 해석을 직접 증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래 속에서는 여정의 종착점이자 안착의 공간으로 기능한다. 문산에서 나와 덜레기를 지나고, 음지덜레기 또는 음짓벌에서 바라본 뒤, 도안에서 쉬는 구조는 이 일대의 생활 동선과 공간 감각을 압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8. 도안동 농요와 농경 지명의 맥락

도안동 일대의 농요 전승은 덜레기가 단순 지명 이상의 문화적 의미를 지녔음을 보여준다. 『농민신문』은 도안동이 가락리·가둔리·음지덜레기·도안리 등 네 자연마을로 이루어졌고, 가락리 들녘을 중심으로 도안동 농요가 전승되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도안동 농요가 대전민속경연과 전국민속경연에 출전한 사실도 전한다.
대전 서구문화원의 서구민속예술 자료에서도 도안동 농요의 농기와 영기, 농악, 농민 행렬 등 농경 의례적 연행 장면이 소개된다. 이는 도안동 일대의 지명들이 단순 위치명이 아니라, 농사·마을공동체·의례·노동요와 결합한 문화지명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덜레기와 음지덜레기는 농경지 속의 구릉이나 마을자리만이 아니라, 논과 들, 두레와 농요, 마을 간 동선 속에서 기억된 지명이었다고 볼 수 있다.

9. 종합 해석

덜레기는 세 층위가 겹쳐 있는 지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문헌 속 덜레기는 덕락리(德樂里)이다. 이는 덕 많은 목씨 부자와 풍류, 즐거운 삶의 이야기를 품은 마을유래담으로 전한다. 이 전승은 지역민의 자긍심과 유교적 가치관이 반영된 해석으로 존중할 필요가 있다.
둘째, 생활 속 덜레기는 자연마을명과 구전 동요의 이름이다. 문산, 덜레기, 음짓벌 또는 음지덜레기, 도안으로 이어지는 노랫말은 이 일대의 지명과 보행 리듬, 생활 동선을 함께 담고 있다.
셋째, 지형 속 덜레기는 낮은 산지와 들녘, 하천과 모래땅이 만나는 자리의 이름이다. 들판 속에 덜렁 남은 구릉, 하천의 유수가 가장자리를 덜어낸 듯한 땅, 본산에서 따로 떨어져 나온 듯한 도상구릉성 지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세 해석은 서로 배척되지 않는다. 오히려 덜레기는 토박이 지명, 한자 표기, 마을 전승, 농요, 지형 감각이 함께 쌓인 복합 지명으로 보아야 한다. 德樂里라는 한자 표기는 덜레기라는 소리에 덕과 즐거움의 뜻을 입힌 문화적 해석일 수 있고, 덜레기라는 소리는 하천과 구릉, 들녘이 먼저 만들어낸 지형의 말일 수 있다.

10. 문화적 가치와 활용 방향

덜레기는 도시개발 속에서 사라진 옛 지명이 아니라, 오늘날 덜레기근린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이름을 단순한 공원명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원신흥동과 도안동 일대의 옛 지형과 농경문화, 구전 동요를 이어주는 문화자산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향후 덜레기근린공원의 장소 해설이나 마을교육 자료를 만들 때에는 다음과 같은 방향을 제안할 수 있다.
첫째, 기존 덕락리 유래담을 배제하지 말고, 목씨 부자와 德樂里 전승을 마을의 인문적 기억으로 소개한다.
둘째, 유성구청 자료에 전하는 원신흥동 민요와 도안동 농요 자료를 함께 제시하여, 덜레기가 노래 속에 남은 생활지명임을 보여준다.
셋째, 덜레기를 통미·툭뫼·딴산·섬백이와 같은 들녘 속 독립 구릉 지명군과 비교해, 어린이와 시민들이 지형을 읽는 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한다.
넷째, 하천과 모래땅, 낮은 산지의 관계를 설명하여, 덜레기를 “물이 덜어내고 들판에 남겨둔 땅”이라는 이미지로 풀어낸다.
다섯째, 향후 1910년대 지형도, 지적원도, 옛 항공사진, 하천선 변화 자료를 비교하여 이 해석을 보강한다.

11. 결론

덜레기는 “덕이 있어 즐거운 마을”이라는 德樂里의 전승을 품고 있다. 동시에 그것은 낮은 산지와 들, 하천과 모래땅이 만나는 자리에서 형성된 도상구릉성 지명일 가능성이 있다. 덜레기라는 소리에는 덜어내다, 덜려 나오다, 덜렁 남다의 지형 감각이 살아 있고, 구전 동요에는 그 땅을 걸어 다니던 사람들의 몸의 리듬이 남아 있다.
따라서 덜레기는 단순한 옛 지명이 아니다. 문헌에는 德樂里로, 노래에는 덜레기와 음지덜레기로, 오늘날 도시공간에는 덜레기근린공원으로 남은 장소 기억이다. 물길이 땅을 덜어내고, 사람은 그 위를 덜렁덜렁 걸어가며, 노래는 그 길을 기억했다. 이처럼 덜레기는 대전 서남부의 도시화 이전 지형과 농경문화, 토박이말의 감각을 함께 보여주는 작은 지명 유산으로 평가할 수 있다.

참고 자료

강병수 외, 『대전의 마을특성연구』, 대전세종연구원, 2019, p.124.
대전서구문화원, 『서구의 마을유래』, 2005, p.48.
대전광역시 유성구청, 「원신흥동 마을유래」.
『농민신문』, 「농요를 찾아서 11 — 대전 도안동농요」, 1998.7.27.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자료, 「사암 박순 선생을 모신 대전 유림의 돈파사 유허비」.
대전서구문화원, 「서구민속예술 — 도안동 농요」.

지명이름이 상호가 되는 이런 모습 난 참 좋다
덜레기 남측 산책로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