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산책] 홈골에서 호음리까지
홈·홈통·호음·호암·호미 계열 지명의 지형어와 인지 의미망 연구
초록
예산군 고덕면 호음리(好音里)는 한자로는 “좋은 소리”의 마을로 읽힌다. 그러나 예산군 지명유래 자료는 호음리의 옛 이름을 “홈골” 또는 “호음동”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점은 호음리라는 한자 지명이 본래의 지형어를 덮어쓴 이름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본고는 호음리의 바탕에 놓인 ’홈골’이라는 고유 지형어를 중심으로, 홈·홈통·홈골·홈실·흠실·호음·호무골·호미골·호골 계열의 변이를 살피고자 한다. 더 나아가 부록에서는 홈·흠·틈·트다·후미·구미·금·구역·무리 등의 말이 지닌 파임, 벌어짐, 후미짐, 경계, 구획, 트임의 의미망을 인지 의미론과 음상 의미망의 관점에서 검토한다.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호음리의 “좋은 소리”는 단순한 한자식 미화가 아니라, 홈골이라는 지형 감각 위에 덧입혀진 후대의 문화적 해석일 수 있다. 홈은 단순히 파인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물길이 통하는 자리이고, 산지가 열리는 자리이며, 사람이 들어앉는 자리이고, 소리가 울리는 자리다.
주요어: 호음리, 홈골, 홈통, 지형어, 지명학, 구미, 후미, 음상, 인지 의미론, 세맨틱 네트워크
1. 문제 제기: 호음리는 왜 ’좋은 소리’가 되었는가
예산군 고덕면을 지나다 보면 호음리, 호지, 재호지 같은 이름들이 눈에 들어온다. 호음리의 한자는 好音里다. 글자만 보면 “좋은 소리의 마을”이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은 이 이름을 좋은 말소리, 좋은 울림, 혹은 호랑이 울음 같은 이야기로 풀고 싶어진다. 실제로 한국의 지명에는 이런 후대 해석이 많다. 본래의 입말 지명이 한자로 옮겨지면서, 그 한자의 뜻에 맞추어 새로운 이야기와 전설이 붙는 경우다.
그런데 호음리의 경우에는 중요한 단서가 남아 있다. 예산군청 지명유래 자료는 호음리를 “본래 덕산군 고산면의 지역으로서 ‘홈골’ 또는 ’호음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상리, 공수동, 매동, 황매동, 천변리 일부를 병합하여 호음리라 해서 예산군 고덕면에 편입되었다”고 적고 있다. 같은 자료는 자연마을 이름으로도 “호음동(홈골)”을 함께 기록한다.
이 기록은 호음리 해석의 중심을 바꾼다. 호음리는 처음부터 “좋은 소리”였던 것이 아니라, 먼저 “홈골”이었다. 다시 말해, 한자 好音은 본래 지명인 홈골의 소리를 따라가며 붙인 표기이거나, 최소한 그 지형어를 한자식으로 미화한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호음리 연구의 출발점은 好音이라는 한자 뜻풀이가 아니라, 홈골이라는 고유어 지형어가 되어야 한다.
2. ’홈’의 지형어적 의미: 파임, 통로, 물길
’홈’은 일반적으로 물체에 오목하고 길게 팬 줄을 뜻한다. 사전적 의미로도 홈은 “물체에 오목하고 길게 팬 줄”로 풀이된다. 이 뜻은 지명으로 옮겨가면 매우 자연스럽게 지형어가 된다. 산과 산 사이가 길게 파이면 홈이고, 그 홈으로 물이 흐르면 홈통이며, 그 홈을 따라 사람이 들어앉으면 홈골이다.
홈은 단순한 오목함이 아니다. 홈은 파인 자리이면서 동시에 흐름을 만드는 자리다. 지붕의 홈통은 빗물을 모아 흘려보내고, 논의 물홈은 물을 대고, 산지의 홈은 물길과 길목과 마을터를 만든다. 그러므로 지명 속 홈은 파임과 통로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다.
예산 고덕면 내부의 지명망도 이 해석을 뒷받침한다. 예산군 고덕면 몽곡리는 본래 “굼실” 또는 “몽곡”이라 했고, 상몽리는 “윗굼실” 또는 “상몽곡”이라 했으며, 자연마을 이름으로 “홈실(흠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 일대에는 굼실, 홈실, 흠실, 홈골이 서로 멀지 않은 의미권 안에 놓여 있는 셈이다. 굼은 움푹 들어간 자리, 홈은 길게 파인 자리, 흠은 파임이 흔적으로 남은 자리다. 이들은 모두 안으로 들어감, 오목함, 패임, 후미짐의 감각을 공유한다.
예산 대술면 시산리의 “홈통골”도 중요한 사례다. 예산군 자료는 시산리를 안락산을 주산으로 하여 전불, 절골, 홈통골이라는 작은 골짜기를 중심으로 마을을 이룰 정도의 산골 마을로 설명한다. 여기서 홈통골은 이름 자체가 물길의 형상을 강하게 드러낸다. 산과 산 사이에 길게 파인 골, 그 안으로 물이 흐르고 사람이 기대어 사는 자리다.
3. 호음리의 지명학적 해석: 홈골 → 호음동 → 호음리
호음리의 변천은 다음과 같은 층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원형 지명은 홈골이다. 홈골은 지형의 생김새를 직접 가리키는 고유어 지명이다. 골짜기가 길게 파이고, 그 안으로 물과 길이 통하는 지형을 표현한 이름으로 볼 수 있다.
둘째, 중간형은 호음동이다. 예산군 자료가 “홈골 또는 호음동”이라고 병기한 점을 보면, 홈골이라는 입말이 한자식 표기 또는 행정식 표기를 만나 호음동으로 옮겨간 과정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행정 지명은 호음리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과정에서 여러 자연마을을 병합하면서 호음리라는 법정리 이름이 확정된다. 이때 好音이라는 한자는 “좋은 소리”라는 아름다운 뜻을 부여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여전히 홈골의 지형 감각이 남아 있다.
넷째, 후대 해석은 좋은 소리 또는 호랑이 울음이다. 好音은 좋은 소리로 읽히고, 만약 虎音으로 상상하면 호랑이 울음으로도 풀린다. 그러나 지명학적으로는 이 해석을 원형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본래 지형어 위에 덧붙은 한자식 의미 부여, 혹은 민간적 재해석으로 보는 편이 더 안전하다.
따라서 호음리는 “좋은 소리의 마을”이기 전에 “홈골의 마을”이었다. 그러나 이 둘은 반드시 대립하지 않는다. 홈이 있어야 물소리가 흐르고, 골짜기가 있어야 메아리가 울린다. 좋은 소리는 평평한 허공에서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홈과 틈과 골짜기라는 지형의 몸을 통해 생겨난다.
4. 홈통·홈골 계열의 비교 사례
홈골과 홈통이 지명어로 쓰였다는 점은 다른 지역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리에는 “홈골”이 나오는데, 거제시 지명유래는 이를 “구조라 북쪽에 지형이 홈통 같은 좁고 깊은 골짜기로 크고 작은 두 개의 골짜기”라고 설명한다. 같은 페이지에는 “작은 홈골”도 “구조라 북쪽 홈통을 걸친 계곡의 골짜기”로 기록되어 있다.
거제시 연초면 이목리에는 “홈택골”이 확인된다. 거제시 자료는 홈택골을 “감나무골 동남쪽에 홈통모양의 길고 깊은 골짜기”라고 설명한다. 이 사례는 홈 계열 지명이 단순히 충청권의 국지적 현상이 아니라, 남해안 산지 지형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쓰였음을 보여준다.
이들 사례에서 반복되는 표현은 분명하다. 홈골은 “홈통 같은”, “좁고 깊은”, “길고 깊은” 골짜기다. 곧 홈은 길이와 깊이를 동시에 가진 지형어다. 단순히 우묵한 구덩이가 아니라, 길게 파여 물과 바람과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선형 지형을 가리킨다.
선생님이 현장에서 확인한 남양면 신왕리의 “홈통”도 이 의미망과 잘 맞는다. 산과 산 사이에 물이 흐르고, 길게 이어지는 텃바구니 같은 지형을 마을 사람들이 홈통이라 부른다면, 그것은 문헌 사례와 현장 언어가 만나는 좋은 증거다. 여기서 홈통은 물이 통하는 곳이며, 동시에 산지가 열려 마을 생활이 가능해진 자리다.
5. 홈골의 음운 변이: 호음·호무·호미·홍골·호골
홈골이 항상 홈골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지명은 구전되는 동안 소리가 바뀌고, 행정문서에 들어가면서 한자로 옮겨지고, 때로는 후대 전승에 맞추어 다시 풀이된다.
충북지명산책의 “호무골, 호미골” 글은 호무골·호미골을 홈골에서 변이된 것으로 추정하면서, 지명에서 홈은 “홈처럼 길고 깊은 골짜기의 지형”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같은 연재의 “호골” 글도 홈골이 호미골·호무골로 변하기도 하고, 홍골을 거쳐 호골로 변이될 가능성을 언급한다.
또 다른 “호정골” 글에서는 울산 북구 호계동의 경우를 예로 들며, 호랑이와 관련한 설명보다 “홈골, 홍골, 호곡” 계열로 보아 ’호’의 원형을 홈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글은 여러 지역의 홈골과 홍골 사례를 들고, 호정골의 변이 과정을 “홈잣골 → 홈장골 → 호장골 → 호정골”로 재구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물론 모든 ‘호’ 지명을 홈 계열로 돌릴 수는 없다. 실제로 범바위, 호랑이골, 호암 같은 전승이 뚜렷한 곳도 많다. 그러나 호음리처럼 문헌에 홈골이 직접 남아 있거나, 홈통 같은 지형 설명이 확인되는 경우라면, 호랑이 전승이나 좋은 소리의 한자 뜻보다 먼저 홈 계열 지형어를 검토해야 한다.
이때 가능한 변이 경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홈골은 호음동·호음리로 한자화될 수 있다.
홈골은 호무골·호미골로 음운 변이를 겪을 수 있다.
홈골은 홍골이 되었다가 호골로 줄거나 변할 수 있다.
홈골에 잣골, 장골, 정골 같은 후부 요소가 결합하면 호장골·호정골 같은 이름으로 바뀔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虎, 好, 湖, 胡, 紅 같은 한자가 뒤늦게 붙어 새로운 전승을 만들 수 있다.
6. 홈에서 굼·구미·후미로: 안으로 들어간 지형의 확장망
홈 계열은 굼·구미·후미 계열과도 연결해서 볼 수 있다. 예산 고덕면의 몽곡리가 본래 “굼실”이었다는 기록은 이 가능성을 열어준다. 굼은 안으로 우묵하게 들어간 자리의 감각을 지닌다. 굼실은 곧 굼진 골, 움푹 들어간 마을터였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홈실·흠실이 같은 고덕면 지명망 안에서 확인된다는 점은, 굼·홈·흠이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유사한 지형 감각을 공유했음을 보여준다.
더 넓게 보면 구미 계열이 있다. 국립국어원의 『새국어생활』에 실린 지명 연구 글은 “~구미, ~기미, ~금, ~그미” 계열 지명을 제시하면서, 이 계열이 “금, 끔, 그미, 구미, 귀미, 기미, 지미” 등의 변이형을 가지며, 대체로 바다에 연한 땅이나 하천 곁의 후미진 곳을 가리키는 지명어로 생각된다고 설명한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에도 北仇未, 馬仇未, 仇彌 같은 예가 보인다고 하여 그 연원이 오래되었음을 지적한다.
이 구미 계열은 홈골 연구를 넓혀주는 중요한 축이다. 홈이 길게 파인 자리라면, 구미는 물가나 하천 곁에서 휘어 들어간 후미진 자리다. 후미는 구석지고 깊숙한 곳이다. 구석, 구억, 구역 같은 말도 여기서 인지적으로 가까운 자리에 놓인다. 모두 열린 벌판의 중심이 아니라, 한쪽으로 들어가고 휘고 감추어진 자리다.
따라서 홈골·굼실·구미·후미는 다음과 같은 지형 감각으로 묶을 수 있다.
홈은 길게 파인 자리다.
굼은 안으로 우묵하게 들어간 자리다.
구미는 물가나 하천 곁의 후미진 자리다.
후미는 깊숙하고 구석진 자리다.
구석과 구억은 공간의 가장자리, 안쪽, 모퉁이를 가리킨다.
이 계열은 모두 “밖으로 펼쳐진 공간”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간 공간”을 가리킨다. 산과 산 사이, 물길의 안쪽, 해안의 후미, 하천의 굽이, 마을이 숨듯 들어앉은 자리다. 이런 곳은 외부에서 보면 후미지고 구석지지만, 내부에서 보면 물과 바람과 길이 모이는 생활의 품이다.
7. 한자화와 전승화: 지형어가 이야기가 되는 과정
한국 지명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은 고유어 지명이 한자로 옮겨지면서 본래 의미가 흐려지는 현상이다. 소리를 따라 적으면 음차가 되고, 뜻을 따라 적으면 훈차가 되며, 때로는 소리와 뜻이 뒤섞인 표기가 된다. 이 과정에서 본래 지형어는 행정 지명과 한자 뜻풀이 속으로 숨어든다.
호음리가 좋은 사례다. 홈골이라는 지형어는 호음동을 거쳐 好音里가 되었다. 여기서 好音은 “좋은 소리”라는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이 해석은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지형어와 한자어가 만난 뒤 생긴 2차적 문화 의미로 볼 수 있다.
홈골은 실제로 소리와 관계가 깊다. 홈통으로 물이 흐르면 물소리가 난다. 골짜기는 바람을 통과시키고 메아리를 만든다. 산과 산 사이의 좁은 홈은 소리를 모으고 울린다. 그러므로 好音이라는 한자는 본래 지형어를 지운 것이면서도, 동시에 그 지형이 만들어내는 감각을 아름답게 재해석한 이름일 수 있다.
지명은 단순한 언어 표지가 아니다. 지명은 땅의 형상, 주민의 발음, 행정의 표기, 후대의 이야기, 풍수적 상상, 생활의 기억이 겹겹이 쌓인 결과다. 호음리의 이름 안에는 홈골이라는 지형, 호음동이라는 변이, 好音里라는 한자, 좋은 소리라는 문화적 해석이 함께 들어 있다.
8. 본문의 결론
호음리의 핵심은 “좋은 소리”가 아니라 “홈골”이다. 그러나 이 결론은 好音이라는 이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이름의 깊이를 복원하는 일이다.
호음리는 본래 홈처럼 파인 골짜기 마을이었고, 그 홈은 물이 통하고 바람이 통하고 사람이 들어앉는 자리였다. 그 지형어가 호음동을 거쳐 호음리라는 행정 지명이 되었고, 한자 好音은 그 이름에 “좋은 소리”라는 새로운 의미를 입혔다. 그러므로 호음리는 이렇게 읽을 수 있다.
호음리는 좋은 소리의 마을이기 전에 홈골이었다.
그러나 홈이 있었기에 물소리가 있었고, 골짜기가 있었기에 울림이 있었다.
따라서 好音은 홈골을 지운 이름이면서도, 동시에 홈골의 지형 감각을 아름답게 되살린 이름이다.
부록 A. 홈·흠·틈·후미·구미·금의 인지 의미망
— 파임, 벌어짐, 경계, 구획, 트임의 세맨틱 네트워크
1. 부록의 성격
이 부록은 본문과 증명 방식이 다르다. 본문은 문헌과 지명 사례를 중심으로 호음리와 홈골 계열을 검토하였다. 반면 이 부록은 홈·흠·틈·트다·후미·구미·금·구역·무리 같은 말들이 공유하는 의미 감각을 살핀다. 즉, 어원 확정이 아니라 인지 의미론적 연결망을 그리는 것이다.
특히 흉, 일본어 組(kumi) 같은 말은 홈·굼·구미와 직접 어원 관계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흉은 한자어 계통이고, 일본어 組는 일본어 내부에서 ’조립하다, 짜다, 무리를 이루다’의 뜻을 가진 말로 정리된다. 일본어 사전 자료에서도 組는 construct, assemble, group, team의 뜻과 くみ·くむ의 읽기를 가진다고 설명된다. 따라서 이를 한국어 홈·구미와 어원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위험하다. 다만 공간을 나누고, 경계를 긋고, 그 안에 사람과 사물을 묶는다는 인지 구조의 비교 사례로는 참고할 수 있다.
이 부록의 핵심은 “같은 어원”이 아니라 “같은 감각권”이다.
2. 홈: 파인 자리가 통로가 되다
홈은 오목하고 길게 팬 줄이다. 물체의 표면에 홈이 나면, 그곳은 더 이상 완전한 평면이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에 흐름이 생긴다. 물은 홈을 따라가고, 바람은 홈을 타고, 소리는 홈 안에서 울린다.
지명에서 홈은 결함이 아니라 조건이다. 홈이 있어야 물길이 생기고, 물길이 있어야 논과 마을이 생긴다. 홈골은 상처 난 골짜기가 아니라, 살림이 들어앉은 골짜기다.
3. 흠: 파임이 결함으로 읽히는 순간
흠은 홈과 비슷한 감각을 가지지만, 가치 판단이 더 강하다. 물건에 흠이 있다, 사람에게 흠이 있다, 말에 흠이 있다는 식으로 쓰이면 그것은 결점이다. 홈이 지형과 구조의 말이라면, 흠은 평가와 관계의 말이다.
하지만 지명 속 흠은 꼭 부정적인 말로만 읽을 수 없다. 예산 고덕면 상몽리의 자연마을 이름에 “홈실(흠실)”이 함께 기록되는 것처럼, 흠은 지형의 파임을 가리키는 현장어로도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사람의 몸이나 그릇에서는 흠이 결점이지만, 땅에서는 흠이 물을 모으고 사람을 들이는 자리일 수 있다.
4. 틈: 벌어짐은 결핍이면서 가능성이다
틈은 벌어져 사이가 난 자리다.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도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를 들어 틈을 “벌어져 사이가 난 자리”로 설명한다. 틈은 닫힌 것이 완전히 막혀 있지 않다는 증거다. 벽의 틈으로 바람이 들고, 바위틈으로 풀이 나고, 사람 사이의 틈으로 오해도 생기지만 대화도 들어간다.
틈은 두 얼굴을 가진다. 하나는 결핍이고, 다른 하나는 가능성이다. 틈이 없으면 완전해 보일 수는 있지만 아무것도 새로 들어오지 못한다. 틈이 있어야 싹이 트고, 말문이 트이고, 생각이 트인다.
5. 트다: 막힘이 열림으로 바뀌는 사건
트다는 막혀 있던 것을 치우고 통하게 한다는 뜻을 가진다. 국립국어원 자료도 트다를 “막혀 있던 것을 치우고 통하게 하다”로 풀이한다. 트다는 홈이나 틈과 달리 상태가 아니라 사건이다. 홈은 이미 파인 자리이고, 틈은 이미 벌어진 자리라면, 트다는 막힌 것이 열리는 순간이다.
싹이 튼다.
말문이 튼다.
귀가 트인다.
길이 트인다.
장이 튼다.
관계가 트인다.
이 모든 표현에는 막힘에서 통함으로 넘어가는 감각이 들어 있다. 지명으로 돌아가면 홈골은 땅이 트인 자리다. 산지가 갈라지고 물길이 열리고, 사람이 드나들 통로가 생긴 자리다.
6. 후미와 구미: 안으로 들어간 자리
후미는 안쪽으로 굽어 들어가거나 깊숙하게 들어간 곳의 감각을 가진다. 구미 계열 지명은 이 후미짐을 지명으로 보존한다. 국립국어원의 지명 연구 글은 구미·기미·금·그미 계열을 제시하고, 이들이 바다에 연한 땅이나 하천 곁의 후미진 곳을 가리키는 지명어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홈과 구미는 서로 가까워진다. 홈은 길게 파인 자리이고, 구미는 물가나 하천 곁의 후미진 자리다. 둘 다 열린 벌판의 중심이 아니다. 둘 다 안으로 들어간 자리, 굽어 숨은 자리, 물과 사람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자리다.
홈골은 산지의 구미이고, 구미는 물가의 홈일 수 있다.
둘은 모두 “안으로 들어간 공간”을 가리킨다.
7. 금: 파임이 선과 경계가 될 때
금은 표면에 생긴 선이다. 금이 가다, 금을 긋다, 금을 넘다 같은 표현에서 금은 자국이면서 경계다. 홈이 깊이의 감각이라면, 금은 선의 감각이다. 홈은 안으로 파이고, 금은 표면을 나눈다. 그러나 둘은 모두 완전한 평면이 갈라진 흔적이라는 점에서 만난다.
금은 물리적 자국에서 사회적 경계로 확장된다. 운동장에 금을 그으면 편이 나뉘고, 땅에 금을 그으면 소유가 나뉘고, 마음에 금이 가면 관계가 갈라진다. 그러므로 금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세계를 나누는 인지 장치다.
여기서 구역과 무리가 생긴다. 금을 긋고, 그 안을 하나의 구역으로 삼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의 무리로 묶는다. 일본어 組(kumi)가 직접 어원 관계를 갖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짜다, 엮다, 무리를 이루다”라는 의미는 금을 긋고 구역을 만들고 그 안에 사람을 묶는 보편적 인지 구조와 비교할 수 있다. 組는 일본어에서 group, team, class, set 등의 뜻으로 쓰인다고 설명된다.
8. 흉: 한자어가 한국어 감각 안에서 체화되는 방식
흉은 한자어 계통이므로 홈·흠·틈과 같은 어원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어 생활어 안에서 흉은 흠, 상처, 일그러짐, 보기 좋지 않은 자국의 의미장과 강하게 결합한다. 흉하다, 흉물스럽다, 흉터, 흉지다 같은 말은 모두 표면의 온전함이 깨진 상태, 보기 불편한 흔적, 몸이나 사물에 남은 결함을 가리킨다.
이것은 어원 문제가 아니라 체화의 문제다. 한자어가 한국어 안으로 들어오면 글자의 뜻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이미 한국어 안에 있던 유사한 소리, 몸의 감각, 시각적 인상, 가치 판단과 만나 생활어가 된다. 흉은 그 과정에서 흠과 가까운 의미장에 붙는다. 흉은 글자로는 한자어이지만, 감각으로는 한국어의 흠·상처·일그러짐의 세계 안에서 작동한다.
9. 음상 의미망: ㅎ·ㄱ·ㅌ 계열의 열린 감각
한국어의 음성상징은 소리와 의미의 관계가 필연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언어표현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음성상징을 “언어기호에서 소리와 의미의 관계가 필연적이라고 느껴지는 언어표현”으로 정의하고, 한국어에서는 자음과 모음을 교체하여 어감 차이를 실현한다고 설명한다.
홈·흠·후미 계열의 ㅎ은 숨이 빠져나가는 소리, 안쪽에서 바깥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의 느낌을 준다. 굼·구미·구석 계열의 ㄱ은 굽고 구겨지고 구획되는 감각과 잘 붙는다. 틈·트다 계열의 ㅌ은 막힌 표면이 터지고 열리는 순간의 파열감을 준다. 물론 이것은 엄밀한 어원 증명이 아니라 음상적 해석이다. 그러나 지명과 생활어의 감각을 읽을 때, 이런 음상은 의미망을 설명하는 보조 장치가 될 수 있다.
이 의미망은 다음과 같이 그릴 수 있다.
홈 — 길게 파인 자리
흠 — 파임이 결함으로 읽힌 자리
틈 — 벌어져 사이가 난 자리
트다 — 막힌 것이 열려 통하게 되는 사건
굼 — 안으로 우묵하게 들어간 자리
구미 — 물가나 하천 곁의 후미진 자리
후미 — 깊숙하고 구석진 안쪽
금 — 표면을 나누는 선과 경계
구역 — 금으로 나뉜 공간
무리 — 구역 안에 묶인 사람과 사물
흉 — 상처와 결함이 몸의 감각으로 체화된 말
이 연결망의 중심에는 “닫힌 표면이 열리는 순간”이 있다. 홈은 표면이 파인 것이고, 틈은 표면이 벌어진 것이며, 금은 표면이 나뉜 것이고, 트다는 막힌 것이 열린 것이다. 그리고 그 열린 자리에 물과 바람과 말과 사람이 들어온다.
10. 부록의 결론: 결핍은 통로가 된다
홈·흠·틈·후미·구미·금은 모두 완전하고 매끈한 중심의 언어가 아니다. 이 말들은 가장자리, 파임, 벌어짐, 후미짐, 경계, 결함의 언어다. 그러나 바로 그 결핍이 통로가 된다.
홈은 물길이 된다.
틈은 싹이 나는 자리가 된다.
후미는 배가 숨는 포구가 된다.
구미는 물가의 마을터가 된다.
금은 구역을 만들고, 구역은 무리를 만든다.
흠은 상처이지만 기억이 된다.
트임은 생명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호음리의 홈골은 단순히 패인 골짜기가 아니다. 그것은 지형의 흠이 아니라 생활의 품이다. 산과 산 사이가 파였기 때문에 물이 흘렀고, 물이 흘렀기 때문에 사람이 살았고, 사람이 살았기 때문에 말소리와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생겼다. 그리하여 홈골은 마침내 好音, 좋은 소리의 마을이 되었다.
호음리라는 이름의 아름다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좋은 소리는 완전한 평면에서 나지 않는다.
소리는 홈에서 울리고, 바람은 틈에서 지나가며, 물은 골을 따라 흐른다.
호음리는 결국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홈이 파인 곳, 물길이 트인 곳, 바람과 말소리가 드나든 곳.
그 홈골이 한자를 만나 좋은 소리의 마을, 호음리가 되었다.


호음리가는 고개는 호음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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