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터무늬-지명, 땅이름 이야기

지명에서 정치 언어까지... '좌가 우에게 자리를 내어 준 시대'

잉화달 2026. 7. 26. 14:27

지명에서 정치 언어까지   좌가 우에게 자리를 내준 시대

― 우산에서 우파까지, 방향의 말에 쌓인 정치적 의미망

정치체제와 전쟁이 좌우의 자리를 뒤집은 뒤,
말은 그 기울어진 자리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지명·언어·정치의 의미망

 

우산이라는 이름에서 시작하다

 

산과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같은 이름을 여러 곳에서 만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우산’이다.

우산(牛山)은 대체로 소와 관련된 이름으로 풀이된다. 산줄기가 누운 소처럼 생겼거나, 소의 머리·등·배와 닮아서 붙은 이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소우 자를 쓴 우산이 많고, 와우산·우두산·우각산·우이도처럼 소의 형상을 빌린 지명도 전국에 널리 분포한다.

그러나 필자가 현장에서 만난 남부지방의 우산 가운데에는 단순히 소 모양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곳도 있었다. 마을보다 위에 솟아 있어 ‘웃산·윗산’이라 부를 만한 곳, 주변의 들이나 바다를 멀리 내려다볼 수 있어 망을 보기에 좋은 산들이었다.

따라서 모든 우산을 하나의 어원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어떤 우산은 소 모양에서 비롯되었을 것이고, 어떤 곳은 위에 있는 산이라는 공간적 위치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망을 보던 산이라는 기능이 결합한 곳도 있을 것이다. 이후 낯설어진 토박이 이름을 牛山으로 적으면서 소에 관한 지형 이야기와 전설이 덧붙었을 수도 있다.

청양의 우산과 우산성은 이 여러 의미가 겹쳐 보이는 흥미로운 장소다.

청양 우산은 공식적으로 소우 자를 쓴 우산(牛山)이다. 산의 형세가 소와 관련되었다는 설명도 전한다. 그러나 우산은 청양 읍내 동쪽에 솟아 있어 읍내와 주변 들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산이기도 하다. 그 위에는 둘레 약 1㎞에 이르는 우산성이 자리한다. 성벽의 높은 부분은 장수가 올라가 지휘하던 장대 자리로 추정되고, 모서리에는 성벽 바깥을 감시하고 방어하기 위한 치성도 설치되어 있다. 소처럼 보이는 산이면서 동시에 위에서 주변을 살피고 망을 보기에 좋은 산인 셈이다.

그런데 이 ‘우’라는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지명에서 사람의 성품으로, 다시 정치의 좌우로 이어지는 묘한 의미망이 나타난다.

물론 이 글에서 다루는 여러 ‘우’는 어원이 같지 않다. 소 우(牛), 오른쪽 우(右), 우수·우월·우승의 우(優), 우직하다의 우(愚)는 서로 다른 한자이며 본래의 뜻도 다르다. 이것들을 하나의 어원에서 갈라져 나온 말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어원의 동일성이 아니라, 서로 다른 말들이 한국인의 귀에서 같은 소리로 만나면서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겹침이다.

 

소처럼 우직하다는 말

 

소는 우리 농경사회에서 특별한 동물이었다. 농사를 짓는 힘이었고, 짐을 나르는 일꾼이었으며, 한 집안의 중요한 재산이었다. 걸음은 느리지만 힘이 세고, 말없이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동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사람의 성품을 두고 “소처럼 우직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직(愚直)의 우는 소 우(牛)가 아니라 어리석을 우(愚)다. 한자의 본뜻만 놓고 보면 영리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고지식하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 우직하다는 말은 반드시 욕이 아니다. 잔꾀를 부리지 않고, 쉽게 흔들리지 않으며,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는 사람을 칭찬할 때도 사용한다.

여기에는 소의 문화적 이미지가 적지 않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소처럼 우직하다’는 표현이 반복되면서 본래 어리석고 곧다는 뜻의 우직함은 묵묵하고 성실하며 믿을 만한 태도로 재해석되었다. 어리석을 우가 소의 이미지를 만나 오히려 미덕을 얻은 셈이다.

그리고 같은 소리의 곁에는 우수(優秀), 우월(優越), 우승(優勝)이 있다. 우수한 사람은 뛰어난 사람이고, 우월한 것은 남보다 나은 것이며, 우승은 경쟁에서 가장 앞선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다. 이 말의 우(優)는 소 우나 오른쪽 우와 전혀 다른 글자다. 그럼에도 일상의 말소리 안에서는 모두 똑같이 ‘우’로 들린다.

소는 우직하고, 우수한 사람은 뛰어나며,
우월한 것은 남보다 낫고, 우승한 사람은 마침내 이긴다.
서로 다른 뿌리의 말들이 ‘우’라는 소리에서 하나의 표정을 얻는다.

 

오른쪽이 바른쪽이 된 까닭

 

방향의 말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우리는 오른쪽을 ‘바른쪽’이라고도 부른다. 오른손잡이가 다수인 사회에서 오른손은 익숙하고 능숙한 손이었으며, 글씨를 쓰고 물건을 건네고 악수하는 손이었다. ‘오른’과 ‘옳은’의 역사적 관계는 국어사 자료를 통해 더 세밀하게 살펴야 하지만, 오늘날 한국인의 언어 감각 안에서 오른쪽과 옳은 것, 바른쪽과 바른 것은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반면 왼쪽은 그 반대편에 놓인다. 왼손잡이는 오랫동안 다수의 오른손잡이와 다른 사람으로 취급받았고, 왼손으로 밥을 먹거나 글씨를 쓰는 아이에게 오른손을 쓰도록 강요하던 시절도 있었다.

여기에 외지다·외따로·외곬 같은 말들이 있다. 중심에서 벗어나거나 홀로 떨어진 상태를 나타내는 말들이다. 왜소(矮小)는 작은 체격이나 규모를 뜻한다. 물론 ‘왼’, ‘외진’, ‘왜소’가 같은 어원이라는 뜻은 아니다. 왼쪽의 ‘왼’과 왜소의 ‘왜(矮)’를 언어학적으로 직접 연결할 근거도 없다.

그러나 말의 의미는 사전 속 어원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비슷하게 들리는 소리와 자신이 살아오며 축적한 경험을 함께 떠올린다. ‘왼·외·왜’처럼 가까이 들리는 소리가 비뚤어짐·고립·주변·작음·서투름의 이미지와 반복해서 만난다면, 그 사이에는 느슨하지만 무시하기 어려운 문화적 연상망이 형성될 수 있다.

 

좌파와 우파는 원래 자리의 이름이었다

 

이러한 언어환경에 근대 서양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좌파와 우파라는 말이 들어왔다.

정치적 좌우는 처음부터 사상의 내용을 정교하게 표현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 아니었다. 그 시작은 프랑스혁명기의 의회 자리 배치였다. 1789년 프랑스 국민의회에서 국왕의 거부권과 기존 질서를 지지하는 의원들은 의장석의 오른편에, 혁명과 변화를 지지하는 의원들은 왼편에 자리했다. 이후 혁신파는 왼쪽, 기존 질서와 안정성을 중시하는 세력은 오른쪽이라는 구분이 굳어졌다.

자코뱅과 지롱드의 대립은 이후 프랑스혁명 내부의 좌우가 분화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좌파와 우파라는 말의 최초 발생을 자코뱅과 지롱드의 자리에서만 찾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보다 앞선 국민의회의 자리 배치에서 이미 좌우 구분이 시작되었고, 이후 입법의회와 국민공회를 거치며 정치적 의미가 구체화되었다.

결국 좌파와 우파는 출발부터 선악이나 우열을 표시한 말이 아니었다. 의장석에서 보았을 때 어느 편에 앉았는지를 가리키던 공간의 이름이었다. 그저 자리의 차이였던 말이 혁명과 보수, 변화와 안정, 평등과 질서라는 거대한 정치적 의미를 얻어 세계로 퍼져나갔다.

 

청룡은 많고 백호는 적었다

 

그런데 서양의 좌우 정치개념이 들어오기 전, 한국 전통사회의 좌우 질서는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과 달랐다.

조선시대 의정부의 삼정승은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의 순서였다.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높았고, 좌찬성이 우찬성보다 앞섰다. 좌승지와 우승지, 좌포도청과 우포도청처럼 좌우가 나란히 짝을 이루는 관직과 기구에서도 좌가 먼저 놓였다.

마을의 공간을 읽는 풍수적 관념에서도 좌우는 중요한 질서였다. 마을이나 집터의 중심에서 앞을 바라볼 때 왼쪽 산줄기는 좌청룡, 오른쪽 산줄기는 우백호라 불렀다. 뒤에는 현무가 주산을 이루고, 앞에는 주작과 안산·조산이 놓였다. 좌청룡과 우백호는 서로 마주 보는 두 산줄기이면서 마을과 명당을 양옆에서 감싸 보호하는 한 쌍이었다.

그런데 필자가 여러 지역의 지명을 조사하며 흥미롭게 느낀 점이 있다. 실제 지명에서는 청룡 계열의 이름이 비교적 자주 나타나는 데 비해, 백호라는 이름은 상대적으로 드물다는 것이다.

청룡골·청룡산·청룡등·용머리·용등·용꼬리처럼 용의 형상을 빌린 지명은 여러 지역에서 쉽게 만난다. 반면 백호산·백호등·백호골처럼 백호를 이름에 그대로 드러낸 사례는 그만큼 많지 않다. 물론 범바위·범골·범재처럼 호랑이 계열의 다른 이름까지 포함하면 분포는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이를 전국적인 통계로 확정하려면 별도의 지명 목록을 구축해 검증해야 한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청룡이 백호보다 훨씬 선명하게 드러나는 경향은 살펴볼 가치가 있다. 용은 물과 구름을 부르고 하늘로 오르며 왕권·번영·생명력을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산줄기가 길게 이어지거나 물길을 끼고 돌아가는 모습도 용의 움직임으로 설명하기 쉬웠다. 그래서 마을 왼쪽 산줄기뿐 아니라 굽이치는 능선과 물길, 마을을 감싸는 여러 지형에 용의 이름이 폭넓게 붙을 수 있었다.

반면 호랑이는 산의 수호자이면서 실제로 사람과 가축을 해칠 수 있는 두려운 존재였다. 백호는 풍수의 관념 안에서는 마을을 지키는 신수였지만, 생활세계에서는 경계하고 피해야 할 짐승의 이미지도 함께 지녔다. 이 차이가 청룡 지명은 풍부하게 만들고 백호라는 직접적인 지명은 상대적으로 적게 만든 한 이유였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좌청룡이라는 위치 자체가 가진 상징적 우위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동쪽은 해가 뜨고 봄이 시작되는 방향이며, 청룡은 생동하고 뻗어나가는 기운을 상징했다. 서쪽의 백호가 거두고 지키는 힘이라면 동쪽의 청룡은 시작하고 성장하는 힘에 가깝다. 좌청룡과 우백호는 본래 서로를 보완하는 한 쌍이지만, 지명과 이야기에서는 청룡의 역동적이고 길상적인 이미지가 더 적극적으로 선택되었을 수 있다.

물론 전통사회에서 언제나 좌가 우보다 우월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의례의 성격과 바라보는 방향, 생자와 죽자의 공간에 따라 좌우의 위계가 달라지기도 했다. 좌청룡과 우백호 역시 어느 하나가 일방적으로 우월하다기보다 명당을 함께 완성하는 두 축이었다.

그럼에도 좌의정·우의정의 관직 서열과 좌청룡·우백호의 풍수적 상징을 함께 놓고 보면, 전통사회에서 좌가 결코 부정적인 방향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관직에서는 좌가 앞섰고, 필자의 현장 관찰에 따르면 지명에서는 청룡이 백호보다 풍부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좌우의 정치적 위계가 먼 옛날부터 고정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통사회에서 높은 관직과 생동하는 청룡의 방향이었던 좌는, 서양의 정치적 좌우 개념이 들어오고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전혀 다른 이름이 되었다.

 

해방과 분단이 좌우의 의미를 바꾸다

 

서양의 좌파·우파 개념은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 언어에 들어왔다.

당시의 좌우는 지금처럼 단순히 진보와 보수를 뜻하지 않았다. 민족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자유주의·무정부주의를 비롯한 여러 사상과 독립운동 노선이 복잡하게 교차했다. 좌우합작이라는 말에서 보듯 좌와 우는 서로 다른 정치세력을 구분하는 이름이었지만, 반드시 한쪽이 대한민국이고 다른 한쪽이 적국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정이, 북쪽에는 소련군정이 들어섰다. 좌와 우는 더 이상 의회 안의 의견 차이나 정치노선의 구분에 머물지 않았다. 미국과 소련,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남한과 북한이라는 세계적 냉전 구도와 결합하기 시작했다.

이어 남과 북에 각각의 정부가 수립되고 한국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은 정치적 좌우를 삶과 죽음의 문제로 바꾸었다. 어느 편으로 분류되는가에 따라 체포되거나 처형되고, 가족과 고향을 잃기도 했다. 좌우는 의견의 방향이 아니라 적군과 아군, 충성과 배신을 가르는 이름이 되었다.

전쟁 이후 남한에서는 장기간의 반공체제가 이어졌다. 공산주의는 단순히 하나의 정치사상이 아니라 북한·전쟁·학살·가난·독재·민족의 적과 결합해 인식되었다. 반공주의는 국가의 정통성과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중심 이념이 되었고, 교육·영화·신문·집회와 일상의 언어를 통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좌’는 공산주의와 북한, 전쟁의 공포와 연결되었다. 반면 ‘우’는 대한민국·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안정과 성장의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시대에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높았던 좌우의 위계가 근대 정치에서는 사실상 뒤집힌 것이다.

 

역사적 역전을 언어가 받아들이다

 

물론 이러한 역전을 우리말의 음상이나 방향 감각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좌우의 정치적 위계를 바꾼 결정적 요인은 식민지와 해방, 미군정과 소련군정,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 냉전과 반공체제였다. 언어가 전쟁을 만든 것도 아니고, ‘오른쪽’이라는 말 때문에 우파가 집권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이미 형성된 언어의 의미망이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좌우의 역전을 받아들이고 강화하는 데 일정 부분 일조했을 가능성은 있다.

우파의 ‘우’는 본래 오른쪽 우(右)일 뿐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귀에서는 우직·우수·우월·우승과 같은 말들이 함께 들린다. 오른쪽은 바른쪽이기도 하다. 어원이 서로 다른 말들이지만, 우파라는 이름 주변에는 듬직함·뛰어남·우월함·승리·올바름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모여든다.

반면 좌파의 ‘좌’는 일상의 언어에서 이와 같은 긍정적인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왼쪽은 바른쪽의 반대처럼 느껴지고, 왼손에 대한 오랜 편견과도 만난다. 여기에 외짐·왜소함처럼 어원은 다르지만 소리와 의미가 가까운 말들이 주변부·작음·서투름이라는 이미지를 보탠다.

전통 관직에서는 좌가 우보다 높았지만, 근대 대중의 일상 언어에서는 오른쪽과 바른쪽의 결합이 훨씬 강하게 작동했다. 그 위에 분단과 전쟁의 기억이 올라앉았다.

왼쪽이라는 생활문화적 낯섦, 좌익이라는 정치적 적대, 공산주의와 북한이라는 전쟁의 기억이 한꺼번에 겹쳐졌다. 좌파라는 말은 정책 내용을 설명하기도 전에 위험하고 불온한 이름으로 받아들여질 조건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필자가 말하는 ‘의미망의 일조’다. 의미망이 좌우의 정치적 역전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일어난 역전을 사람들의 감정과 일상 언어 속에 정착시키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느끼게 하는 데에는 일정한 역할을 했을 수 있다.

 

노동과 분배의 정치가 떠안은 또 하나의 이미지

 

한국의 좌파가 불리한 이름을 갖게 된 데에는 정책적 지향도 역설적으로 작용했다.

근대적 좌파는 대체로 노동자·농민·서민과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강조했다. 부의 집중을 비판하고, 재분배와 복지, 노동권과 평등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그러나 압축성장과 경쟁을 경험한 한국 사회에서 성장·성공·부·승리는 매우 강력한 가치가 되었다. 우파는 시장·성장·기업·부강한 국가를 말했고, 이러한 언어는 우수·우월·우승이라는 기존의 긍정적 의미망과 비교적 쉽게 결합했다.

반면 좌파가 말하는 노동과 분배는 가난한 사람들의 정치, 가진 것을 나누자는 정치로 인식되었다. 분배는 함께 잘살기 위한 제도임에도, 정치적 공격 속에서는 남의 것을 빼앗는 일이나 모두를 똑같이 가난하게 만드는 ‘하향평준화’로 묘사되곤 했다.

결국 한국의 좌파라는 이름에는 적어도 세 겹의 부담이 쌓였다. 오른쪽과 왼쪽을 대하는 생활문화적 비대칭, 분단과 한국전쟁 및 반공체제가 만든 공포와 적대의 기억, 노동·분배·평등을 가난과 하향평준화로 바꾸어 놓은 정치적 프레임이다.

반대로 우파라는 이름에는 오른쪽·바른쪽이라는 방향 감각, 우수·우월·우승이라는 긍정적 동음어, 성장·안정·승리를 강조하는 정치적 서사가 포개졌다.

한쪽은 정책을 말하기 전에 이미 바르고 듬직하고 이기는 쪽처럼 들렸다. 다른 한쪽은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불온하거나 위험한 세력이 아니라는 사실부터 해명해야 했다. 어쩌면 한국의 좌파 정치인들은 상대 후보와 경쟁하기에 앞서, 자신에게 붙은 이름표와 먼저 싸워야 했는지도 모른다.

 

이름은 중립적이지 않다

 

정치는 정책과 이념으로 경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당의 강령을 읽기 전에 이름을 듣고, 정책의 내용을 검토하기 전에 그 말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만난다. 이름은 생각보다 중립적이지 않다.

청양의 우산에는 소의 모습과 위에 있는 산의 위치, 주변을 굽어보는 조망과 성곽의 기능이 함께 겹쳐 있다. 하나의 우산이라는 이름 안에 지형·동물·방어·감시의 여러 층위가 쌓여 있는 것이다.

정치의 우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오른쪽 우는 소 우와 다르고, 우수·우월·우승의 우와도 다르다. 우직의 우는 더더욱 다르다. 그러나 한 사람의 귀와 마음속에서는 이 말들이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작동하지 않는다. 같은 소리는 서로를 불러내고, 오래된 경험은 새로운 말의 표정을 만든다.

좌도 마찬가지다. 조선의 국가질서에서 좌는 우보다 높은 자리이기도 했고, 마을 공간에서는 생동하는 청룡의 방향이었다. 그러나 근대 서양의 정치용어가 들어오고, 해방 이후 미군정과 소련군정, 분단과 한국전쟁, 장기간의 반공체제를 거치면서 좌는 이전과 전혀 다른 의미를 얻었다.

정치체제와 전쟁이 좌우의 위계를 뒤집었고, 언어의 의미망은 그 뒤집힌 관계를 사람들의 일상적인 감정 속에 정착시키는 일을 도왔다.

좌와 우는 프랑스 의회에서 우연히 선택된 자리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 이름이 한국에 도착했을 때는 더 이상 같은 무게의 두 방향이 아니었다. 한쪽은 바르고 우수하며 우월하고 마침내 우승하는 소리를 얻었다. 다른 한쪽은 외지고 작고 서투르다는 연상 위에 공산주의와 전쟁의 기억까지 떠안았다.

정치인은 공약으로 경쟁하지만, 때로는 그 공약보다 먼저 붙은 이름이 이미 출발선을 기울여 놓는다.

좌가 우에게 자리를 내준 것은 말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가 좌우의 자리를 뒤집은 뒤, 말은 그 기울어진 자리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것이 우산이라는 작은 지명에서 시작해, 우파와 좌파라는 거대한 정치의 이름까지 이어지는 우리말 의미망의 또 다른 풍경이다.

 

참고자료

1. 청양군 문화관광, 「청양의 대표산성 우산성」, https://www.cheongyang.go.kr/tour/sub01_01_05.do

2.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산성」,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9945

3.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반공」,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1438

4. 주철희, 「한국전쟁 전후 반공문화 형성과 그 의미 - 반공영화를 중심으로」, 『한국민족문화』 59, 2016, 3-40쪽.

5. Lumen Learning, “Politics within the Revolutionaries,” World History, https://courses.lumenlearning.com/suny-worldhistory/chapter/22-4-2-politics-within-the-revolutionaries/